[피플+] 유병수 "믿음이 나를 서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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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유병수(23·인천)는 '곡절'이 많은 선수다. 이제 겨우 프로 3년 차지만 웬만한 베테랑 못지않은 명암을 겪었다. 2009년 데뷔와 동시에 탁월한 득점력으로 화제를 모았고, 인천을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이듬해엔 역대 최고 경기당 골 기록으로 득점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2년차 징크스란 말이 무색했고,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기까지가 그의 '명'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지만 그에게 '암'은 너무 가혹했다. 눈부신 데뷔 시즌을 보냈음에도 신인왕은 김영후(강원)의 몫이었다. 거친 플레이와 '다이빙'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득점왕에 올랐음에도 부진한 팀 성적 탓에 시즌 베스트11에 뽑히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다. 짧은 시간의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특히 아시안컵 호주전에선 후반 22분 지동원(전남) 대신 교체투입됐지만 후반 42분 다시 윤빛가람(경남)과 교체되는 수모도 겪었다. 이로 인한 조광래 감독을 향한 '항명파동'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설상가상 올 시즌에는 승부조작 파문을 둘러싼 소문의 중심에 서있다. 출처도 없고, 증거도 불분명하지만 말이 말을 낳으며 그는 어느새 승부조작의 '몸통'이 되어 있었다. 뜻하지 않게 피로골절 부상까지 당하며 결장이 이어지자 의혹은 더욱 커졌다.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그였기에 한 시간여의 인터뷰는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그간 재활과 마음고생 탓인지 살이 조금 빠진 모습. 말하는 중간 힘없이 눈을 자주 내리 깔았다.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 속에 지친 기색도 느껴졌다. 하지만 흔들리진 않았다. 오직 축구에만 집중하고, 공격수로서 골만 생각하려 했다. 자신을 향한 의혹에는 동료와 스승, 팬들의 믿음을 등에 업고 맞서겠다고 했다. 더 이상 긴말은 필요 없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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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바람이 나무의 뿌리를 깊게 만든다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유병수라는 선수를 보면 이제 겨우 프로 3년차임임에도 참 우여곡절이 심했던 것 같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나.

유병수(이하 유)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웃음) 3년 동안 이룬 것도, 해본 것도 많았지만 동시에 6~7년 차 정도는 된 선수나 겪어볼 만한 일도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3년차라고 하면 놀라더라. (웃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좋은 거다. 내가 실력이 없었다면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고 그런 일도 겪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프로에 와서 많은 부분을 이뤘기 때문에 그런 경험도 한 거다. 선수 생활의 좋은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한다.

스투 유난히 상복도 없었다. 신인 시절 눈에 띄는 활약을 했지만 내셔널리그에서 온 '중고신인' 김영후에게 신인왕을 내줬고, 지난해에는 득점왕을 하고도 베스트11에 뽑히지 못했다.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가.

신인왕을 놓친 건 아쉽지만 후회되진 않는다. 데뷔 전부터 프로에서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신인임에도 그만큼 팀에 도움을 줬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특히 인천이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점에서 더욱 그랬다.

스투 유병수라는 공격수가 확실히 주목받은 건 역시 지난해 득점왕 등극이었다. 당시 역대 최다 경기당 득점 기록으로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시즌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이 있었나.

솔직히 내가 그 정도까지 해낼 줄 몰랐다. 초반에 몇 게임 동안에는 골이 너무 안 들어가 답답했다. 심지어 '아, 올해 한 골은 넣을 수 있을까. 작년에 내가 어떻게 14골이나 넣었지?'란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웃음) 그러다 한 경기에서 4골을 넣으면서 자신감이 살아났다. 그 다음부터는 때리면 들어갈 것 같더라.(웃음)

스투 페널티킥 골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작년에 PK는 세 골밖에 없다. 많다고 생각 안 한다. 그리고 전부 내가 직접 얻어낸 거였다. 공격수라면 PK도 만들어내야 한다. 오히려 찬 거에 비해서 많이 못 넣었다.(웃음) 그래서 나쁜 오해를 산 부분도 있고…

스투 그라운드에서 지나치게 거칠다는 평이나 다이빙을 자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일단 운동장에 나가면 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내가 워낙 통뼈인데다 힘도 있는 편이다. 그래서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몸싸움을 하다 보면 나는 괜찮은데 상대방은 넘어지거나 어딜 잡고 고꾸라진다. (웃음)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거칠어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넘어질 때는 정말 아프거나 다칠 것 같을 때다. 다이빙을 자주 한다는 얘기도 거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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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마크가 그에게 남긴 것

스투 활약이 이어지며 대표팀에도 선발됐었다. 어느 시점에서 대표팀에 대한 욕심이 생겼는가.

솔직히 대표팀에 들어가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뽑아주셨을 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처음에 파주에 갔는데 마냥 좋았다. TV로만 봤던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고…특히 유럽에 있던 선배들과 함께하며 많이 배웠다.

스투 많은 기대를 받으며 대표팀에 뽑혔지만 기회를 많이 얻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문제도 생겨났다. 특히 아시안컵 당시에는 미니홈피에 썼던 글이 발단이 돼 '항명 파동'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는데.

그렇다. 그건 내 실수고 내 잘못이다.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사람 말이라는 게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쁘게 얘기해도 좋게 해석할 수 있고, 사람들 판단하기 나름이니까. 곧바로 조광래 감독님께 '제가 깊이 생각 못 했다고, 전혀 감독님을 향한 불만이 아니였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대표팀에서 좀 부진한 모습을 보여 네티즌의 악플을 많이 받았다. 처음 그런 비난을 겪다 보니 마음도 아팠고 힘들었다. 그 글은 그런 상황과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이었다. 감독님이나 팀에 대한 불만은 전혀 아니었다. 막말로 감독님께 정말 불만이 있었다면 그렇게 안쓴다.(웃음)

스투 사실 이동국(전북), 유병수처럼 소속팀에서 늘 주전으로 뛰던 선수가 대표팀에서 교체 선수의 역할을 맡게 되면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커로 투입되다 보면 자연스레 득점에 대한 부담도 커질 테고.

그럴 수밖에 없다. 동국이 형이나 나나 리그에서 득점왕도 했고, 항상 팀에서는 선발로 뛰는데 대표팀에 가면 뒤에 있으니까… 선발과 교체는 리듬 자체가 다르다. 특히 교체로 들어가면 골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사실 축구를 시작한 이래로 교체 선수로 뛰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적응이 쉽지 않더라. 대표팀에 있으면서 교체 선수들의 애환과 고생을 많이 느꼈다.

스투 아시안컵 호주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됐다가 다시 교체 아웃됐다. 당시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선수 본인이 받은 충격이 컸을 것 같다. 김정우도 지난해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같은 일을 겪은 뒤 '축구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얘기했었다.

모든 선수가 그럴 것이다. 대표팀에 들어간 선수는 소속팀에서 모두 최고의 선수들 아닌가. 그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전 국민이 다 보는 대표팀 경기에서… 솔직히 마음도 많이 상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스투 지난해 K리그 경기 도중 황재원(포항)과 설전과 과격한 파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아시안컵 당시 숙소 룸메이트로 둘이 함께 배정됐다는 사실에 팬들이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혹시 방에서 둘이 싸우는 건 아니냐며.

나도 기사를 통해 팬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걸 알았다(웃음). 사실 그 전에 한일전 앞두고 파주에서 다시 만났을 때 먼저 죄송하다는 얘기를 건넸다. 재원이 형도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이해해주셨다. 지금은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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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조작 의혹 힘들었지만…"

스투 최근 승부조작 파문이 K리그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몇몇 선수에 대한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도 진실처럼 떠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유병수란 이름도 그 속에 들어있다.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많이 오가면서 선수 이전에 개인 한 사람으로서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오늘 인터뷰를 하기전까지 이 질문을 안 받으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더 이상 말을 꺼내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만있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고, 아직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말을 꺼냈다가 괜한 오해만 더 커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스투 그래도 가만있으면 뒷말이 더 확대 재생산되지 않을까.

괜찮다. 신경 쓸 일도 아니고, 지나갈 일은 지나갈 일이다.

스투 승부조작 소문 중 하나였던 최성국은 계속 혐의를 부인하다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선이 유병수에게로 쏠리고 있다. 이달 초 K리그 워크숍에서도 둘이 동시에 승부조작에 대한 소문을 부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사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솔직히 말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말을 해도 내 본의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나쁘게 보는 사람은 나쁘게만, 좋게 보는 사람은 좋게만 볼 수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건이 끝난 것도 아니라 지금 상태에선 어떻게 말하기가 어려운 내 처지를 모두가 이해해줬으면 한다.

스투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것 같다. 억울하다는 생각이나 혹시 선수 생활 그만두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도 있나.

억울하다고 얘기해봤자 달라질 것도 없다. 마무리될 때까지 말을 아끼고 싶다.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나중에 진실은 다 밝혀지기 마련이니까, 밝은 면만 보려고 한다.

스투 그런 면에서 지난 25일 서울전(1-1 무승부)에 골을 넣지 못한 것이 아쉽겠다. 2개월여만의 부상 복귀였고,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결승골을 뽑아냈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웠을 텐데. 그때 좋은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치며 오히려 의심 어린 시선이 커진 면이 있다.

그렇다. 만약 골을 넣었더라면 팀도 이기고 좋았을 텐데…(한숨)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 상태에선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 말고도 어느 누구라도 이런 처지에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그럴 거다. 상황이 그렇다.

스투 자신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땐 언제였나.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올해 초였다. 뭐 연예계나 다른 데를 봐도 그렇고 소문이라는 게 누가 퍼트린 건지 모르지 않나. 그저 타고 타고 흘러가는 거다. 처음 들었을 때 '뭐야'란 생각보다 '왜 이런 얘기가 나왔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특히 올 시즌 초에 좀 부진했던 게 많이 신경쓰였다. 겨울에 아시안컵 참가하면서 쉬지도 못하고 잔 부상 탓에 훈련량이 많지 않아 몸이 좀 안 좋았는데, 그런 상황은 외부에서 알기 어렵지 않나.

스투 제일 힘들었던 부분 역시 팀 내 지도자와 동료 선수들과의 관계였을 것 같다.

음…아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 나를 믿어주었기에 힘이 됐고, 더 굳건히 설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엔 동료나 코칭스태프와 껄끄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런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주변 사람들이 서로 조심스럽게 대해줬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많이 도와줬다. 특히 그라운드에서 동료들이 내게 신뢰를 줬다. 내 옆에서 찬스도 많이 만들어주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우리 팀 성적이 좋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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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인천'의 미래

스투 좋다. 어두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방금 얘기했던 인천의 최근 성적에 대해 얘기해보자. 초반 5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 최근 10경기에서 5승 4무 1패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덕분에 리그 5위까지 오르며 전반기를 마쳤다.

팀이 초반에 워낙 안 좋았다. 젊은 선수 위주로 구성된 팀이라 경험이 부족했고, 새로 영입된 선수도 많아 조직력도 떨어졌다. 그래도 몇 경기 치르면서 경험도 쌓이고, 서로 잘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커졌고 덩달아 성적도 좋아졌다.

스투 발가락 피로골절로 4월 30일 이후 두 달여 동안 경기에서 뛰지 못했다. 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을 텐데.

선수이기에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당연히 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팀 성적이 좋아서 견딜 만했다. (웃음) 특히 인천이 쉽게 지지 않는 경기력을 갖췄다는 게 기뻤다. 그런 와중에 복귀한 만큼 많은 골을 넣으며 팀이 잘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스투 그동안 인천을 두고 유병수의 '원맨팀'이란 지적이 많았다. 허정무 인천 감독도 그런 평가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하더라.

작년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팀 득점의 절반을 내가 기록했으니까. 인천이 한두 골 넣는 경기에선 대부분 내가 골을 넣었다. 더군다나 팀 성적이 안 좋다 보니, 그런 평가가 더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 자신도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감독님도 그런 부분을 많이 바꾸시려고 했고, 팀에도 한교원, 박준태, 유준수 등 좋은 공격수가 많이 들어왔다. 덕분에 압박감이 많이 줄었다. 나도 물론 잘해야 하지만 매 경기 잘할 순 없지 않나. 그럴 때 나를 대신해줄 선수가 많아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작년에는 골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 심했다.

스투 허정무 감독은 주로 어떤 점을 지적하고 강조해주었나.

내 경우엔 따로 한두 가지 꼽아서 말씀해주시기보단, 경기나 훈련 상황 때마다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다가와 정확한 지적을 해주셨다. 그래서 더 많이 도움이 됐다. 특히 문전 움직임이나 박스 안에의 결정력 등을 강조하신다.

스투 얼마 전 창단 이래 처음으로 홈에서 수원을 꺾었을 때 선수들이 정말 좋아했었다. 징크스를 깨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역시 시민구단이 기업구단을 상대로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점이 있나.

시민구단끼리의 자존심 대결도 있지만, 기업 구단과의 대결은 늘 이기고 싶다. 사람들은 돈 많은 팀이 더 잘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좋은 선수도 많고, 연봉도 많이 받고. 그런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난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어느 팀이나 이기고 싶다. 특히 강팀을 이겼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데뷔 시즌 후반기 수원 원정에서 '버저비터'를 넣고 이겼을 때가 최고였다. 그해 전반기 때 수원을 홈에서 잡을 수 있었는데 내가 PK를 놓치는 바람에 이기지 못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지난해 서울전에서 경기 종료 5분 남기고 결승골 넣고 1-0으로 이겼을 때도 기뻤다.

스투 3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론 시민 구단 최초로 아시아 무대로 가고 싶은 열망도 클 것 같다.

올해는 선수단 전체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욕심이 크다. 한 번 해보자는 의지가 강하다. 팀이 잘 자리 잡고 있고, 후반기에 한두 명 좋은 선수만 들어오면 잘 될 것 같다. 어린 선수가 많다 보니 이왕이면 경험 있는 선수가 합류했으면 한다.

스투 인천은 선수비-후역습 스타일의 전술을 구사한다. 공격수로서 이따금 답답한 느낌도 들 법한데

올 시즌 처음 합류한 선수들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답답하진 않다. 이때까지 잘해오지 않았나. 우리가 수비만 하는 게 아니다. 인천을 수비축구라고 하는데, 막상 상대팀에 비해 슈팅찬스도 많고, 골도 자주 넣는다. 공격으로 나가는 과정이나 빠른 역습이 좋은 팀이다. 그러니까 나도 골 기회를 많이 얻는 것 아니겠는가.

스투 지난해 유독 당신이 많은 골을 넣었음에도 팀이 어이없이 승리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전전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했음에도 3-3으로 비겼고, 곧바로 경남전에서도 선제골과 추가골을 넣었지만 2-2 무승부로 끝났다.

그 땐 '이렇게 골 먹을 수가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런 경험 덕분에 올해는 이길 때도 잘 안 뒤집히고, 오히려 지고 있는 경기에서 역전도 잘한다. 특히 경기 시작 초반에 골을 잘 넣어서 신기할 정도다.(웃음) 우리 팀으로선 좋은 자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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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점왕 2연패, 아직 포기 안 했다

스투 올 시즌 득점왕 2연패는 가능할까. 지난 두 달여 간의 부상 공백이 커보이는데.

공격수라면 득점왕 욕심은 늘 있지 않은가. 끝까지 가봐야 안다. 작년에도 루시오(경남)가 9경기 10골을 넣을 동안 난 고작 1골을 넣었다. 초반 8경기에는 무득점이었다. 나중에 내가 한 경기 4골을 넣었을 때까지만 해도 루시오가 득점왕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루시오가 나머지 경기에서 2골밖에 못 넣더라. 아무도 모르는 거다. 물론 지금까지 봤을때 올 시즌 득점왕은 동국이 형이 유력해 보인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스투 올 시즌은 작년만큼 득점력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한 경기 4골처럼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까.

4골 안 넣어도 된다. 한두 골만 들어가면 된다.(웃음) 특히 올해는 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서울전만 하더라도 전반은 좀 밀렸지만, 후반에는 우리가 더 잘했다. 상대가 헤매는 모습에서 우리의 경기 운영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꼈다.

스투 득점왕 유력 후보로 최근 공격수로 변신한 김정우(상주)도 있지 않나. 김정우가 처음 공격수로 뛴다고 할 때 그렇게 잘할 줄 알았는가.

정우 형도 대단하지만 팀 사정상 힘들 것 같다. 상무 특성상 후반기에 좀 밀리는 경향이 있고, 시즌 도중 전역해 성남으로 돌아가면 다시 미드필더를 볼 테니까. 정우 형은 잘할 줄 알았다. 기본 실력이 워낙 있어서 그런 선수는 어디서 뛰어도 잘한다. 그런데 정우 형이야말로 PK 골 많던데. (웃음)

스투 K리그에서는 어떤 선수를 가장 본받고 싶은가

특별히 누구를 꼽긴 어렵다. 잘하는 선수 모두를 보고 배운다. 개인적으로 우리 팀뿐 아니라 다른 팀 K리그 경기를 많이 챙겨본다. 요즘엔 전북, 포항이 워낙 잘하고 좋은 선수도 많다. 이들 경기를 보고 연구하는 게 실전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스투 해외진출에 대한 욕심도 갖고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특별히 뛰고 싶은 리그나 팀은 없고, 기회가 있다면 나를 원하는 팀에 가서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 더불어 해외에서 내가 통할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스투 우성용 인천 코치가 보유하고 있는 K리그 최다골 기록(116골)을 깨고 해외로 가는 건 어떨까.

그럼 너무 늦어질 것 같다.(웃음) 작년처럼만 하면 금방 깰 수도 있겠지만 그게 쉬운가. 물론 내가 아직 75경기밖에 안 뛰었는데 40골을 넣어서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그 기록은 동국이 형(109골)이 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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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미도 호날두'란 별명, 너무 쑥스러워요"

스투 '월미도 호날두'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 실제로는 호날두보다 루니를 더 좋아한다고 하던데.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누구인가.

아, '월미도 호날두'. 좀 그렇게 안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유병수라고 불러주면 좋은데. (웃음) 너무 쑥스럽다. 원래 호날두보다는 루니같은 스타일을 좋아하고, 셰브첸코를 정말 좋아했다. 셰브첸코의 골 장면을 많이 보고 그대로 따라하곤 한다.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골을 넣는지 유심히 보고,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혔다. 실전에서 많이 도움이 되더라.

스투 자신의 골 감각은 천부적일까, 아니면 후천적일까.

반반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골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저녁에 개인 운동할 때 슈팅 훈련을 정말 많이 했다. 몇 백 개씩 찼다. 무회전킥도 그러면서 익혔던 것 같다. 원래 내 슈팅 자체가 회전이 별로 없다. 사실 그 땐 무회전킥이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주변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 알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중요한 시합에 나가면 연습 때 했던 슈팅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그럴 때마다 '아, 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프로에서 더 많이 느꼈다. 게임은 정말 못하는데, 한번 찬스가 와서 슈팅을 하면 딱 골이 들어가는 거다. 항상 그런 동작과 타이밍을 훈련하려고 노력한다.

스투 조금 안이한 구분이지만 공격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두 가지다.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의 골결정력이 강조되는 역할이 있는 반면, 공수에 걸친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도 있다. 본인은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나.

물론 현대 축구에선 공격수도 수비를 열심히 해야 하고, 폭넓은 움직임을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고 생각했다.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는 위치다. 중앙선을 넘는 순간부터 생각해야 하는 건 패스가 아니라 골이다. 어차피 골을 넣기 위해 패스하는 거고, 이기기 위해선 골이 필요하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더 많이 움직여서 수비도 하고 득점 찬스를 만들고, 그러면서 이기는 거 아닌가. 둘 다 같은 얘기인 셈이다.

스투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계기가 있나.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한 대회 4강전을 치렀는데 나에게 상대 수비 2~3명이 집중 맨투맨 수비를 펼쳤다. 도저히 제대로 뛸 수가 없었고 경기 내내 플레이가 최악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이 후반 40분쯤 갑자기 나를 벤치 쪽으로 부르시더니 '너 뛰지 마'라며 화를 내셨다. 그리고 5분 동안 벤치 바로 앞 사이드라인에 그냥 서있게 하셨다. 0-0 상황이고 지면 결승에 못 오르는 절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내게 벌을 내리신 거다. 기대하신 만큼 실망스러웠기에 충격 요법을 가하신 셈이다. 관중석에서 보는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니 멍청히 사이드라인에 서있는 나를 보며 "쟤 왜 저러냐"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정말 막막했던 순간이었다.

그때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박스 왼쪽 모서리에서 우리 팀이 프리킥을 얻었다. 감독님이 내게 다가와 감아차든 직접 때리든 어떻게든 골을 넣으라며 등을 떠미셨다. 그때 프리킥을 차려고 섰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전까지 게임도 워낙 못했고, 정말 미치겠더라. (웃음) 그런데 수비벽 사이에 공 하나 딱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아주 조금만 빗나가도 수비벽에 걸리는 상황이었다. 사실 무작정 때린 게 얻어걸린 셈인데 그 사이로 슈팅이 지나가 골망을 갈랐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감독님께 달려가 무릎을 꿇은 채 안겼다. 그때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이 동료들에게 '병수가 잘해서 이겼다'라고 말씀해주시는데, 결국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거라고 느꼈다.

스투 사실 소속팀에서는 최전방에서 골을 넣는 역할에 주력한다. 그러다 대표팀에 가면 원톱으로서 득점뿐 아니라 폭넓은 움직임이 강조되기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쉽지 않다. 정말 어렵다. 예전 동국이형 마음 알 것 같다. (웃음) 문전에서 움직임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다만 박스 바깥쪽에서 움직이는 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대표팀에서 요구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내 플레이가 바뀌는 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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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들에게 달려가 안기는 세레모니의 약속

스투 한때 트위터를 열심히 한 걸로 유명한데, 요즘은 트위터 안 하더라.

다쳤는데 그런 거 할 여유가 있겠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잘 나갈 때나 하는 거지…(웃음) 그래도 트위터나 미니홈피 등으로 팬들이 힘내라고 응원해줘 정말 고마웠다. 특히 부상당하고 안 좋은 소문도 돌아 힘들었는데, 나를 믿는다고, 부상에서 빨리 복귀하길 기다리겠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큰 힘을 얻었다.

스투 마지막으로 인천 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시민구단 중에서는 우리가 제일 잘하고 있다. 특히 감독님 덕분에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나도 이제 복귀하니까 인천을 많이 응원해줬으면 한다. 후반기는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경기장 많이 와주셔서 성원해주시는 만큼 골과 승리로 보답하고 싶다. 곧 있으면 새로운 홈구장인 숭의구장도 개장한다. 아직 직접 가보진 못했는데 말만 들어도 유럽이더라. 특히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굉장히 가깝다. EPL보면 골 넣은 선수가 관중들에 안기지 않나. 나도 그런 세레모니가 꿈이었다. 개장 경기나 첫 홈 경기에서 골을 넣고 보여주겠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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