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졸업장보다 귀한 것, 직장보다 중요한 것

취업시즌입니다. 대기업들의 채용시즌이 시작됐습니다. 삼성을 비롯해 SK, LG 등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하반기 채용을 늘린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취업을 해야 할 본인이든, 이를 지켜보고 있는 부모님이든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때입니다.

그러나 올 가을에도 취업은 바늘구멍입니다. 여기저기서 취업박람회가 열리지만 새로운 직장을 잡는다는 게 녹록지 않습니다. 하반기 공채가 본격화됐지만 상장회사 가운데 채용계획이 있는 곳은 35%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일부 취업관련 조사기관에서는 올 가을에 뽑는 신입사원의 수가 최근 7년 이래 가장 적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취업시장이 그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들이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는 경우도 적지 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구직자의 취업문까지 좁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전선에 줄지어 선 청년들의 행렬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취업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입니다. ‘청백전’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지금이 바로 청년백수 전성시대라는 얘기죠.

이처럼 심한 취업난속에서 2가지 현상만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직업보다는 직장을 구하고, 대기업에만 눈을 돌리는 현상이 그렇습니다. 직장이 우선입니까? 직업이 우선입니까? 참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직장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당연히 많기 때문입니다.

결혼중매가 들어오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연봉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이 결정됩니다. 그러니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을 따지기 보다는 일단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개인의 적성을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단 어디든 들어가고 보자”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바로 ‘묻지마 취업’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직장이름만 따져 원서를 넣고 난 후입니다. 일에 대한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합격이 되면 급한 대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은 것입니다.

묻지마 취업. 결국은 본인에게도 인생의 낭비이고, 국가적으로도 손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먹고 사는게 급한데 무슨 얘기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먼 앞날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세가 아쉬운 것 같습니다.

우선 직장을 잡고 봐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직업을 선택했다가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택하면 그만큼 행복지수, 만족지수도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대기업은 근무조건이나 보수 등 모든 면에서 중소기업보다 좋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에선 조직의 우두머리는 소수입니다. 그 소수에 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더라도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취감이나 존재의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고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아시아의 빌 게이츠로 불리고 있는 스티브 김은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무언가 도전하면서 성취하고 싶다면 중소기업의 장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부속품 같은 인생을 보내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따지고, 이를 위해 열정을 바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의 우상이 된 할리데이비슨. 이 회사의 창업자와 성장과정은 막 오른 취업시즌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위대한 기업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다 아는 얘기지만 할리데이비슨은 오토바이로 꿈을 팔았습니다.

창업자인 윌리엄 할리와 동네 친구인 아서 데이비슨은 위스콘신의 밀워키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타고 놀았습니다. 그러나 황야에서 먼 길을 자전거로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할리는 자전거에 모터를 달았습니다. 그때가 1901년이었습니다. 자전거에 모터를 달고 다녀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전거에 모터를 달아 만든 오토바이를 판매하는 회사인 할리데이비슨을 창업했습니다.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아서의 형제 2명도 회사의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창업자였던 할리는 기계를 다루는데 능했고 그의 동생 월터 데이비슨은 오토바이 레이서가 됐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보다 빠르고 성능좋은 모터사이클,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한때 혼다의 추격으로 위기에 몰린 할리데이비슨은 “독수리는 홀로 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기업을 재건했습니다. 그들은 할리오너스그룹을 만들어 전 세계에 있는 애호가들은 모아 정기적인 모터사이클링 행사를 가졌습니다.

고객에게 단순한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고객에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면서 옛 명성을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세계의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이들은 잘나가는 기업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할리데이비슨은 남들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니 세계 최고가 됐고, 큰돈도 만지게 됐습니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이미 고용없는 성장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불황,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젊은이들의 앞날은 그만큼 우울해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직장, 직업을 갖기가 그만큼 어려운 현실이 된 셈입니다. 이럴 때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취업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아닙니다. 대기업, 공기업의 높은 취업문만 탓하지 말고, 스스로 적성과 재능에 맞는 좋은 중소기업, 창업도 생각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믿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전 원래 가진 것 없는 놈이었잖아요. 그냥 밀어붙이는 거죠 뭐” 2인자의 설움을 딛고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양용운 선수가 한 이말을 떠올리면 긴 인생의 로드맵을 새로 짜는 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월급까지 주더라”는 한 젊은 직장인의 말이 유난히 되새겨지는 아침입니다. 졸업장보다 귀한 것, 직장보다 소중한 것이 바로 이런 생각의 출발이 아닐까요?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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