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무현의 침통한 반전드라마

지난 2002년 대선. '盧의 바람'은 거셌다. 정치적으로나 선거구도 상으로나 불리해 보이던 당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까스로 상고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때 특유의 '송곳질문'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인권변호사로 쌓아온 명성에 화려함을 보탠 그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가로, 꿋꿋한 '바보 노무현'으로 이름을 날리며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노사모'라는 열성 팬클럽을 이끌기도 했다.
 
구태정치에 질린 국민은 그의 모습에서 참신함을 엿봤고 '이제 바뀔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일까? 노 후보 당선은 여야나 이념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기자도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의 당선이 확정된 날 밤, 술집에선 '공짜술'이 넘쳐났다. 기분 좋았던 사장님들은 손해를 마다하지 않았다. 노란 물결이 흥분에 휩싸였다.
 
이후 7년 만에 노 전 대통령을 실제로 만났다. 영광스러운 자리도, 업적을 기리는 자리도 아니었다. 기자는 '포괄적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에 불려나온 그를 포토라인 제일 앞에서 마주했다.

버스에서 내린 노 전 대통령은 초췌했다. 초조함이 느껴졌고 언뜻 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심경이 어떠하냐'는 기자들 질문에 "면목 없는 일이지요. 다음에 합시다"라고 짧게 답했다. 짐짓 여유로운 듯 지어보인 미소에선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이 묻어났다.
 
'감동의 드라마'를 써낸 지 7년 만에 '반전 드라마'에 엮여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넘어 침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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