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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X파일] 은밀한 지하, ‘공짜 물’ 펑펑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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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몰래 빼내 수년간 사용하다 덜미…해마다 100건 가까운 범죄 적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물을 공짜로 펑펑 쓴다?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가뭄을 통해 ‘물’의 중요성은 더욱 각인됐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 쩍쩍 갈라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12월 겨울 강수량이 예년에 비해 많다고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물을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도덕적인 당위성 문제를 떠나 ‘물값’을 생각해서라도 아끼는 게 당연하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상수도 요금은 1㎥당 660원 정도이다.
일반 가정도 수돗물 아끼는 데 신경을 쓰는 상황인데 물 사용량이 많은 대형 목욕탕(사우나)은 물 절약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함부로 사용되는 물이 늘어날수록 비용부담이 증가하니 물 절약이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을 공짜로 펑펑 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사용해도 자기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 그저 좋은 일일까. 큰일 날 소리다. 물이 줄줄 새는데 관계 기관이 가만히 있겠는가.

지난해 5월 수원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노정환)는 흥미로운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 이름은 ‘수돗물 절취(竊取)’ 사건. 일단 한자부터 어렵다. 무슨 사건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절취(竊取)는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훔쳐서 가진다는 뜻을 지닌 단어다.
상수도 맨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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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결과는 이런 내용이다. 2012년 12월 서울북부수도사업소는 의심스러운 한 사우나의 문제를 적발해 노원경찰서에 고발했다. 이후 검찰 수사 과정을 거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우나 운영자 A씨와 B씨는 2009년 4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수돗물을 몰래 빼내 사용한 혐의를 받고 기소됐다. 수돗물 7만8000여톤, 시가 6500만원 상당이다. 해당 사우나에서는 수년간 그 많은 수돗물을 공짜로 사용했다는 게 검찰수사 결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해당 사우나에 원래 설치했던 ‘주 배관’ 계량기 앞뒤에 별도의 배관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도수(盜水)’ 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우나 운영자들은 도로포장 공사 시기를 이용해 차도 맨홀의 메인 밸브를 잠근 후 도수시설을 설치한 혐의를 받았다. 평소 수돗물 사용량의 10∼15%가량을 몰래 빼내 사용했는데 2011년 이후 경비 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수돗물을 빼서 쓰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북부수도사업소는 수돗물을 동일하게 공급했는데 사우나 측에서 내는 요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사업소 측은 의심을 품고, 단속(맨홀 카메라 촬영으로 확인)으로 이번 사건을 적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A씨는 서울 종로구 소재 사우나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수돗물을 빼내서 사용하다 ‘집행유예’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돗물을 몰래 빼낸 혐의로 수사당국에 적발된 사람은 A씨뿐일까.

수돗물 절취 혐의로 수사당국에 적발된 이들은 지난해만 해도 여러 명이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지난해 8월 수돗물 무단사용 혐의(특수절도)로 전통시장 상인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상수도관 4곳에 구멍을 뚫어 파이프 시설을 설치한 뒤 4년 7개월에 걸쳐 8만1000톤에 이르는 수돗물을 몰래 빼내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또 부산 사상경찰서는 지난해 10월 수돗물을 훔쳐 사용한 혐의(절도)로 B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B씨는 자신의 자동차 정비업소 인근 지하에 매설된 간이상수도 공급용 관에 연결관 2개를 꽂는 수법으로 수돗물 9000톤을 훔쳐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수돗물 도수(盜水) 사건은 해마다 100건 가까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가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에게 제출한 ‘수돗물 도수(절도)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 8월까지 수돗물 절도는 모두 444건이 발생했다. 몰래 사용한 수돗물은 7억9522만8000리터에 달한다. 피해금액으로 환산하면 6억6810만원에 이른다.

상수도관이 지하에 매설돼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몰래 수돗물을 빼내 쓰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관계 당국에 적발될 경우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처분을 피하기 어렵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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