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올 한해는 유독 기업들이 고의로 저지른 대출사기에 뒤통수를 맞은 은행들이 많았다.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가 짜고 친 대출사기부터 최근의 '모뉴엘 사태'까지, 거액의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이 같은 급증 현상은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가 공모한 대출사기가 올 상반기 통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KT ENS 관련 '금융사기'를 자진 신고한 저축은행 10곳의 피해액이 700억원을 웃돌아 전체 금융사기 피해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분류규정에 따라 금감원이 자체 적발한 은행권의 KT ENS 대출사기 규모가 빠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더욱 크다. 최근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한 모뉴엘까지 '사기'로 확정되면 올 한해 대출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유례없는 급증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달아 발생한 거액의 대출사기를 막지 못한 데 대해서는 각기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대출사기의 직격탄을 맞은 금융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금융사들은 기업들이 작정하고 서류를 꾸밀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특히 모뉴엘의 경우에는 서류가 은행을 거치지 않는 OA(Open Account) 방식이었기 때문에 실제 물품이 제대로 수입상에 전달이 됐는지, 서류가 위조됐는지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외국에서 제조 후 바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고 설명했다. 현장확인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대출을 해 간 기업이 정상적으로 대출 원리금을 갚아왔다면 알아채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KT ENS와 모뉴엘 사태 모두 '이상 징후'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현장확인이 불가능하고 연체가 없었다 하더라도 기업의 경영상태나 현금흐름 등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부실 혹은 허위조작의 징후가 있었던 만큼 대출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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