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부학적 구조부터 역사적 이야기까지
성적 해방감주는 자위기구로 질환 치료..영국·프랑스선 야전병원에도 비치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학창 시절, 영화를 보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적이 있다. 틴토 브라스 감독(84·이탈리아)의 '칼리굴라(1979년).' 로마 황제의 근친상간, 집단간음 등에서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했는데 막상 베일이 벗겨지니 부끄러웠다. 영어의 음부(pudenda)라는 단어가 '부끄러운 (부분)'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됐으니 정상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음부라는 단어를 거의 꺼내지 않는다. 대충 완곡어법으로 얼버무린다. '아랫도리', '은밀한 부분' 등으로. 오히려 생생한 용어들은 욕설로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여성 성기를 동원한 욕은 남성 성기를 사용한 욕보다 더 거친 편이다. 클라토리스 절제가 전통인 나라에서는 클라토리스를 뜻하는 단어가 최고로 추잡한 욕설이다. 이집트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백인 관광객을 욕할 때 '클라토리스의 어미'라고 한다. 남자에게 던지는 최악의 모욕도 '할례받지 않은 어미의 자식'이다.
이 책은 여성의 성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저자 옐토 드렌스는 네덜란드 흐로닝언에 위치한 루트거스 재단의 성과학자다.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여성 성기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학적 작동을 설명한다. 또 성적기관으로 보아 오르가슴, 불감증, G스팟 등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 책 후반부에는 여성 성기에 대한 역사·문화적 이야기들을 전한다. 다양한 나라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여성의 신경증을 성기 마사지를 통해 치료하려 했던 의학적 일화에 눈길이 간다. 놀랍게도 여성 자위 기구인 바이브레이터가 그 전통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바이브레이터는 사람의 손이나 혀를 뛰어넘는 주파수의 진동을 만드는 기계이다. 생산자들은 처음 시장에 내놓으면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선전했다. 1880년 무렵 등장한 최초의 바이브레이터는 의사들이 진찰실에 두는 의료 기구였다. 성적 해방감을 제공함으로써 여성의 몇몇 질환을 치료하고자 했던 오래된 의료 관행의 일환이었다. 전기기계의 에너지를 활용하게 되면서 사용자 수는 급속히 증가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발칸반도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야전병원들이 비치할 정도였다. 이 무렵 전기 마사지사라는 새로운 직군도 나타났다.
저자가 이 영화를 봤다면 미국 마텔 사가 제조한 '님부스2000'의 어이없는 구매 후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 제품은 해리포터 마케팅 열풍을 타고 만들어진 빗자루 장남감이다. 아이들이 다리 사이에 끼고 놀게 만들어진 것으로, 원격조정이 가능한데다 불까지 번쩍번쩍한다. 무엇보다도 진동 기능이 있었다. 많은 부모들은 불평을 퍼부었지만 제조사의 웹 사이트에는 이런 글도 올라왔다. "감사합니다. 내가 선물한 그 빗자루를 여자 조카애가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하루 종일 갖고 놀아요."
<옐토 드렌스 지음/김명남 옮김/동아시아/1만6000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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