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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의 독서유람]'새우등' 코리아, 돌고래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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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대한민국 아닌 '코리아' 명칭
삼국시대부터 남북한 아우르는 용어
패권국 틈바구니서 조율자 역할 제시
새 정부 외교 정책의 틀 돌아볼 기회


김동선 기획취재부장

김동선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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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던 전임 대통령이 '비정상적 국정운영'과 '비상식적 국정농단'으로 물러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다. 정상화의 탈을 쓰고 사회 곳곳에 드리운 비정상은 문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다. 어느 하나 녹록지 않다. 특히 대외 환경은 심하게 꼬였다. 6개월여에 걸친 국정 공백 기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급박하게 요동쳤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 이를 억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자산 전진 배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은 한반도 정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흡사 불과 반세기 전 또는 19세기 말, 멀게는 16세기에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했던 한반도의 처지를 연상케 한다.
이런 점에서 배기찬의 '코리아 생존전략'은 시의적절하다. 저자는 "역사의 연속성은 역사의 변화보다 강력하다. 역사에는 선순환도 있지만 악순환도 있다. 따라서 역사의 필연성과 순환구조를 파악해야 우리는 제대로 선택할 수 있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집필 의도를 표현했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의 개정증보판이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인 저자는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통일외교안보실 동북아비서관을 지냈다. 초판이 나왔을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 차례 언급, 추천하기도 했다. 저자는 10여년 사이 변화된 대외 환경을 반영해 지난달 책을 개정하면서 아예 책 제목을 바꿨다. '이미 생존의 기로에 선' 코리아의 '생존전략'을 제시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한반도'나 '대한민국'이 아니라 '코리아'일까. 책의 일러두기에는 저자의 역사관이 투영돼 있다. 저자는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에 등장한 여러 나라를 통칭하는 용어로 '코리아'를 사용한다. 이는 삼국시대의 고구려·백제·신라, 고려, 조선과 지금의 남북한을 아우른다. 책은 때론 안타깝고 때론 치욕적인, 그래서 드러내기 힘든 과거 코리아의 역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총 7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약 540개에 달하는 각주를 통해 다양한 참고자료를 밝히면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한반도의 운영을 조망하려고 노력한다.
코리아 생존전략

코리아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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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역사, 나아가 전 세계 역사를 크게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패권 경쟁으로 규정한다. 이는 곧 패권을 장악한 나라의 '문명'과 그렇지 못한 '야만'의 전쟁이다. 수천 년 전 농업혁명과 문명건설을 통해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한 중국과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과 무역, 금융, 정치체제를 선도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패권국은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본다. '중심'은 '주변'의 상대적 개념이다. 그래서 주변이 없는 중심은 있을 수 없다. 패권국이 자신을 문명이라 하고 다른 지역을 야만이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주변국을 서열화하고 그래야만 세계적 질서가 성립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문명과 야만의 개념은 패권국의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은 인접국가들과 조공관계를 맺었다. 마찬가지로 계층적 세계관을 형성한 영국에 야만국인 아시아·아프리아 국가들은 불평등조약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 같은 양상은 지금도 본질에 변함이 없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며 세계질서를 주름잡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한반도의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면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나라의 가치 충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은 냉전시대 이후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몽(中國夢)'을 '아시아운명공동체'로 확장하고 나아가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영역을 더 펼치고 있다. 저자는 "향후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이익과 세력의 차원만이 아니라 규점과 이념의 차원에서도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세계 패권국 미국과 지역 패권국 중국의 코리아정책 외에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소로 저자는 두 가지를 더 꼽는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대립 상황에서 코리아의 가치와 북한의 생존력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이때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변국이 느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다. 저자는 이를 일본에는 '열도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이고 중국에는 '대륙의 머리를 때리는 망치'이며 러시아에는 '태평양 진출을 막는 수갑', 미국에는 '일본·태평양의 군사력에 대한 방아쇠'라 비유한다. 이런 이유로 이들 4국에 적대적이지 않는 것이 코리아의 선택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위상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고래들의 싸움을 중재하고 이들을 화해시키는 '돌고래'다. 열강의 격전지가 아닌 균형추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입장에서 국제관계전략을 세밀하게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북아의 중추적 중견국가'다운 위상·정체성 확립과 함께 국익과 원칙에 따른 외교안보, 한미동맹의 굳건한 유지, 반중(反中)·반일(反日) 연대 불가담, 다자외교의 확대, 자주 국방력 강화 등을 꼽는다.

그간 꼬인 대외 정책의 원상회복을 위해 문재인 정부는 초반 특사 외교를 펼치고 있다. 미·중·일 3국엔 이미 특사가 다녀왔고 이번 주엔 러시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유럽연합(EU)·독일 및 교황청에 특사가 파견돼 외교 현안을 알리고 논의하고 있다.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외교특보였던 이 책의 저자도 EU·독일 특사단에 포함됐다. 통일외교분야에서 품고 있던 철학과 비전을 다시 현실에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새 정부의 통일외교 정책의 틀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교재다. 그도 언급했듯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가 실현될지 지켜보게 된다. 독자 입장에서, 코리아의 천민(天民·세종은 국민 개개인을 중국의 '천자의 백성'도 일본의 '천황의 백성'도 아닌 '하늘의 백성'이라 했다. 그리고 임금인 자신은 그 고귀한 하늘의 백성을 돌보는 사람일 뿐이었다)의 한 사람으로서.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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