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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기자의 Defence]남북 비밀 군사접촉… 이유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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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군사회담은 2011년 2월 실무회담 개최 이후 3년 8개월만에 열린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00년에 제주도에서 개최된 남북군사회담.

남북군사회담은 2011년 2월 실무회담 개최 이후 3년 8개월만에 열린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00년에 제주도에서 개최된 남북군사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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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 씨의 파일에 공개된 건 세 차례 비밀 군사접촉을 계기로 남북간 군사회담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간 군사적인 만남은1988년 연형묵 북한 총리가 '남북고위급 정치ㆍ군사회담'을 제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0년 7월 남북고위급회담의 의제와 시기, 장소 등을 합의한 양측은 같은해 9월4일 양측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한 뒤 1992년 10월까지 총8차례에 걸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진행했다.
남북군사회담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6ㆍ15남북공동선언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및 긴장완화를 위한 실천적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시도됐다. 일각에선 앞서 1998년 2월부터 실시된 판문점 장성급 회담을 남북군사회담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북 양측은 2000년 9월25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에서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을 개최했고 7년 뒤인 2007년 11월27일부터 3일간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을 가졌다. 이후 이명박 정부 중반인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공식 대화를 중단했으며, 2012년 12월 비밀 군사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북한 측 요구로 판문점에서 이뤄진 접촉에는 우리 측에서 이상철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이, 북측은 리선권 국방위원회 대좌(대령~준장 사이)가 대표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3차례 비밀접촉은 모두 2012년 12월 판문점에서 이뤄졌다.

이 접촉에서 우리 측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북측은 "천안함과 연평도는 고위급 회담을 열어 논의하자"며 '민간단체의 전단지살포 중지'를 요구했다. 3차례의 접촉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남북은 각자 4차 접촉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2012년 1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논의를 본격화하자, 2개월 뒤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남북간 군사회담을 제외한 당국간회담의 첫 시작은 지난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8월 12일 당시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특별성명을 통해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전개하자"며 북측에 제의했고 8월20일부터 9월16일까지 판문점에서 5차례의 파견원 접촉 등을 통해 판문점에서 예비회담을 개회하는 데 합의했다.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예비회담은 1971년 9월20일부터 1972년 8월11일까지 약 1년 동안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양측 각 5명씩의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총 25회 개최됐다. 이 과정에서 7ㆍ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는 등 남북 관계는 큰 진전을 이뤘고 이후 1972년 8월29일 역사적인 첫 본회담을 시작으로 총 7차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적십자 회담이 이어졌다.

이후 양측의 입장차로 인한 몇차례 회담 중단과 남북관계 경색을 거친 끝에 남북 양측은 지난 1985년 9월20일부터 3박4일간 첫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권 말에 군사접촉에 나선 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2012년 12월 28일 박근혜 당선인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대에 앞서 만든 사전 시나리오를 행사시간 4시간 전에 받았다. 시나리오 중 '현안말씀' 부분에는 "지금 남북 간에 어떤 접촉이 있었는지"라는 박 대통령의 예상 질문과 함께 '최근 군이 북한 국방위와 3차례 비밀접촉이 있었다고 함'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를 놓고 정상회담을 조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남는다. 남북정상회담은 진보정권이던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당시 한차례씩 이뤄졌지만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때는 이어가지 못한 셈이다. 지난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비밀회동까지 하면서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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