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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째 어르신 설렁탕 대접한 을지로4가 문화옥 이순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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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부터 매달 어르신 100여명 초청해 식사 대접...모신 어르신만 3만2000여명에 달해 설렁탕 가격 환산 약 3억원 가까워...고아들 합동생일잔치, 교도소에 영치금도 넣어줘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을지로4가 설렁탕집인 '문화옥'은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에 뽑힌 맛집이다.

그래서 이 집의 설렁탕을 맛보러 오는 손님들로 늘 붐빈다.
그런데 매달 마지막 주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이 집을 찾는다. 을지로에 사는 독거 어르신 60여분이다. 맑고 담백한 국물에 담긴 따뜻한 밥으로 속을 채우고 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다.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식당을 나서며 입구에 서있는 한 할머니에게 척 엄지를 내밀기도 한다.

바로 문화옥 사장인 이순자(77)씨다.

한끼를 해결하기도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매달 말일마다 동네 어르신 100여명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한 것은 지난 1990년부터. 올해로 27년째 해오고 있다.
그동안 모신 어르신만 3만2000여명에 달한다. 지금 설렁탕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3억원에 가깝다.

이 사장은"외며느리인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셨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르신들을 볼때마다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했죠"고 말했다.
이순자 문화옥 사장

이순자 문화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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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지금의 이씨가 있게 한 멘토나 다름없다. 서울 금호동에서 태어난 시어머니는 광산을 했던 시아버지 사업이 망한 후 전쟁 와중인 1952년 동대문시장 근처에서 빚을 얻어 설렁탕 장사를 시작했다.

바로 문화옥 시작이다. 손맛이 뛰어난 시어머니는 5년후에 을지로4가의 일본식 건물을 사 이사해 본격적인 문화옥 시대를 열었다.

을지로 토박이였던 이씨는 27살 때 남편과 결혼해 분가했으나 형편이 안돼 3년후인 1969년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시집과 가게가 같은 집이라 자연스레 시어머니 밑에서 음식만드는 법을 배웠다.

시어머니는 고기 손질부터 국물 끓이는 방법, 시간까지 이씨를 혹독하게 가르칠 정도로 엄청 무서웠다. 하지만 식당 식구들이나 오는 손님들에게 살갑게 대해 가게 초부터 있었던 주방장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문화옥 주방을 지켰다.

굉장히 적극적이었던 시어머니와 순종적이면서도 성실했던 며느리의 조합은 곧 문화옥을 을지로 일대의 소문난 맛집으로 성장시켰다. 손님들로 넘쳐나면서 음식점을 확대해 나갔다.

이씨가 자신을 대신해 문화옥의 손맛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어머니는 문화옥을 이씨에게 넘기고 종로5가에 문화옥 분점을 냈다. 하지만 1987년 시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이 사장은 "한동안은 정신줄을 놨지요. 시어머니한테 많이 의지했었거든요. 하지만 시어머니가 남기신 문화옥의 손맛을 중단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정신 차리고 음식만드는데 집중했어요"라고 말했다.

그 무렵 을지로동 새마을부녀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씨는 부녀회원들과 동네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점심식사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한 번 이분들을 문화옥으로 모셔서 식사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장은 "당시는 경로당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어머니와 같은 또래의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도 거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라도 내가 정성들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고 말했다.

당시 부녀회장과 상의해 인근의 경로당에 있는 어르신 100분을 모시고 문화옥의 대표상품인 설렁탕을 대접했다. 따뜻한 국물에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이씨는 여력이 있는한 자주 대접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27년째 매달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씨는 봉사에 눈을 떴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까지 집에서 떡을 만들어 매달 부녀회원들과 함께 종로 탑골공원에 가 어르신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었다.남산에 있는 한 고아원 어린이들을 초청해 매달 합동생일잔치도 열어주었다. 또 한달에 한번 안양교도소를 찾아가 떡과 과일은 물론 영치금까지 넣어주기도 했다.

봉사에 대한 즐거움이 더하다 보니 환갑이나 칠순 등 집안의 큰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씨는 잔치 대신 봉사활동을 펼쳤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같지 않아 더 이상의 대외활동은 하지 않지만 성실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씨는 항상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집이 있는 장충동에서 을지로4가까지 걸어서 문화옥에 도착하는 것은 새벽 4시. 혼자서 가게 문 열 준비를 하는데 오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아침기도를 빼먹지 않는다. 종업원들이 오기 전에 본인이 고기를 푹 삶는데 가게 문이 열리는 새벽 6시 무렵 오는 손님들은 이씨가 직접 만든 설렁탕을 맛볼 수 있다.

맛에 대한 이씨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기름이 많아 쓰기 힘든 꼬리와 도가니만 빼고 전부 국산을 사용한다. 그래서 가격 인상 요인이 많음에도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씨가 그만큼 맛을 잡고 있어서다.

고기가 들어올 때마다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데 이런 정성이 담긴 사골과 양지머리, 머리고기로 낸 설렁탕 육수는 담백하다. 조미료를 일체 넣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오래전부터 문화옥을 드나들었던 손님들이 지금도 모임을 문화옥에서 할 정도로 충성적인 단골들이 많다. 심지어 손자들까지 3대가 같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난 2015년에는 서울시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 문화옥은 2004년부터 이씨의 딸인 김성원(48)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이순자 사장(왼쪽)과 딸 이씨의 딸인 김성원씨

이순자 사장(왼쪽)과 딸 이씨의 딸인 김성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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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음력 초하루날마다 고사를 지내는 이씨. 신혼초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여러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지금처럼 한결같이 하고 싶어요.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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