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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생명이야기]<77> 면역세포의 혼란, 자가면역질환

최종수정 2017.12.29 09:52 기사입력 2017.12.29 09:52

김재호 한양대 겸임교수
김재호 한양대 겸임교수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 1형 당뇨병, 크론병, 원형 탈모증, 다발성 경화증, 전신 홍반성 낭창(루푸스), 만성 갑상선염, 갑상선 항진증, 갑상선 저하증, 자가면역성 간염, 자가면역성 췌장염, 다발성 근염, 피부 근염, 백반증….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치료 받아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외부의 적인 세균이나 내부의 적인 암세포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할 면역세포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상이 면역세포 실패의 첫 번째 유형이라면, 위의 질병들은 면역세포가 혼란에 빠져 인식 기능에 오류가 생김에 따라 보호해야 할 정상세포들을 오히려 공격하는 현상으로 면역세포 실패의 두 번째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을 자가면역질환이라 부른다.

면역세포는 적으로 인식되는 물질만을 공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에 걸리면 정상세포인 ‘나’를 침입자인 ‘남’으로 인식해 공격한다.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군과 경찰이 외적이나 강도, 도둑이 아닌 국가에 반역하거나 선량한 국민을 공격하거나 개가 주인을 무는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자가면역질환은 80가지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어떤 세포를 공격하느냐에 따라 병명이 다를 뿐 원리는 같다. 제일 흔한 류마티스 관절염의 경우 면역세포가 손목이나 손가락 같은 관절을 공격할 때 생기는 질병이며, 췌장의 인슐린을 생산하는 베타세포를 공격하면 1형 당뇨병, 간세포를 공격하면 자가면역성 간염이 되는 것과 같다.

자가면역질환은 환자의 수가 대단히 많고, 좀처럼 잘 치유되지 않으며, 사망자도 적지 않으므로 심각한 질병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용어나 질병의 원리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다양한 발병 위치에 따라 병명이 다르다 보니 자가면역질환의 심각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가면역질환 통계를 찾기 어렵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예를 보면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8% 정도가 이 질병의 환자로 암과 심장질환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미국 자가면역질환 협회(AARDA)는 이보다 훨씬 많은, 전 국민의 13%인 5000만 명이 환자라고 추정한다. 65세 미만 미국 여성들의 주요 사망원인의 하나며, 영국에서는 이 질병이 사망원인의 6~7번째를 차지한다고 한다.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때 면역세포가 공격하는 정상세포의 범위는 관절, 근육, 피부, 적혈구, 혈관, 연결 조직, 내분비샘 등 매우 넓다. 질병의 증세는 공격하는 세포에 따라 다양하지만 피로, 고열, 근육 통증, 부종, 붉은 반점, 전반적 불안 등이 있으며 이런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됐다가 완화되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발병 형태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남자에 비해 여자의 발생비율이 세 배 정도로 높으며, 가족 단위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종류의 자가면역질환을 앓거나 성인이 돼 발병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세포가 어떤 정상세포를 적으로 인식해 항체를 생산했는지를 식별, 어떤 질병에 걸리는지 진단하는데, 정확하게 진단이 되는 경우에도 잘 치료하지 못하고 악화되면 증세를 완화시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질병의 원리를 바탕으로 면역세포의 혼란을 잠재우는 근본적인 치유가 아쉽다.

김재호 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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