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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여화]꿈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 인현왕후 별전

최종수정 2017.03.09 09:59 기사입력 2017.03.08 11:45

빈섬스토리 - 몽행기(夢行記), 비운의 왕후와 양성법사의 기이한 인연

1689년은 장희빈의 해였다. 권력의 여야(與野)가 뒤바뀌면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숙종은 후궁인 숙원 장옥정의 아들 균(나중에 경종)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려 했다. 당시 집권세력은 서인(西人)이었는데 정비(正妃)인 인현왕후 민씨가 아직 젊으니 그녀에게서 후사가 나기를 기다려 적자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후궁 장씨를 총애했던 왕은 서인의 전횡에 견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세자 책봉을 강행했다.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상소를 올려 왕의 처사를 비판했다.

이때 장희빈을 밀고 있던 남인(南人) 이현기가 송시열의 주장을 반박하는 상소를 올린다. 숙종은 이를 받아들여 송시열을 삭탈 관직하고 제주로 귀양보냈다가 나중에 사약을 내린다. 또 당시 김수홍, 김수항 등 거물급 정치가들이 파직 유배된다. 이것이 기사환국(己巳換局)이다. 기사환국 이후 남인이 득세한다. 이 사건으로 인현황후도 폐출되어 서인이 되고 장희빈이 정비가 된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가 죽자(1680) 이듬해에 14살의 나이로 왕후가 되었다. 왕은 그 무렵 나인이던 장옥정을 보고 한눈에 반했는데 그의 어머니(명성왕후)가 장씨가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궁궐에서 내쫓았다. 옥정은 중인 집안 출신으로 어머니가 여종이었기에 천인이었다. 그녀는 남인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갔다. 인현왕후는 나중에 왕을 위하여 장씨를 다시 궁궐로 불렀으나 숙종의 총애가 급속도로 그녀에게 쏠리자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갈등을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게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나 부인 인현왕후는 모두 서인 계열이었고 장희빈의 친정은 남인에 속했다. 인현왕후는 장씨를 경계하기 위해 또다른 서인 계파의 후궁(숙의 김씨)을 들이기도 하였으나 숙종은 중전이나 김씨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희빈만 아꼈다.

2002년-2003년 KBS2 드라마 '장희빈'에 등장한 인현왕후(박선영 역)
숙종은 어느 날 인현왕후가 털어놓은 꿈 얘기에 격분했다. 그녀는 꿈에 숙종의 부모가 나타나 장희빈이 전생에 짐승이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숙종이 사냥을 갔다가 쏘아죽였기에 그 원한을 갚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남인계의 나쁜 무리와 어울리게 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장희빈을 나쁘게 말하기 위해 자신의 부모까지 끌어들인 것에 숙종은 몹시 화가 났다. 이런 갈등이 폐출이라는 극한처방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기사환국 때 쫓겨난 영의정 김수항은 유배지 진도에서 사약을 받았다. 그의 세 아들(창집, 창협, 창흡)은 큰 충격을 받고 영평(경기도 포천)에 은거한다. 1691년 이른 봄날 율곡 이후의 최대 유학자로 꼽히는 김창흡(1653-1722)은 울진 불영계곡에 들러 시 한 수를 읊었다.

부용천타화성위(芙蓉千朶化城圍)
탑수나봉홀욕비(塔岫螺峰惚欲飛)
전각담추용황홀(殿脚潭湫龍恍惚)
동문광경불의희(洞門光景佛依?)
일계설수등은폭(一溪雪水謄銀瀑)
이월춘운막취미(二月春雲幕翠微)
향효보수원월거(向曉步隨圓月去)
좌망대상담망기(坐忘臺上淡忘機)

부용화 일천 송이가 성을 이룬 채 에워싼 듯
탑같은 꼭대기 소라같은 봉우리 문득 훌쩍 날아오를 듯
절집 건물 발밑에 있는 연못 바닥에선 용이 은은히 노니는 듯
일주문을 열면 환한 그곳에 부처가 어렴풋이 기대고 있는 듯
한 줄기 계곡에 눈녹은 찬 물은 은빛 폭포로 솟아오르고
이월의 봄구름은 천막처럼 둘러쳐 산안개가 되었네
흘러가는 둥근달 새벽까지 따라 걸으니
좌망대(세상일을 내려놓는 참선을 하는 누대)에 올라 담담히 망각에 드네

“평생에 들어본 바 없는 절창이십니다.” 새벽의 환한 달빛에 취한 김창흡은 혼자인줄 알았는데 시를 듣는 사람이 있었다. 좌망대에서 만난 노승은 양성법사(1622-1696)였다. 38세의 유학자는 잠을 못이루고 계곡 길을 걷고 있었고, 69세의 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달빛을 따라 걷다가 서로 만난 것이다. “어제 저녁 소승은 염불삼매에 들어 시를 한 수 읊었는데, 새벽에 귀인을 만나는 인연을 지으려 그랬던가 봅니다.” “그러셨소이까? 어떤 시인지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물론이지요.”

삼라불경일이혼(森羅佛經日已昏)
송풍나월엄시문(松風羅月掩柴門)
유거자득유거취(幽居自得幽居趣)
일경청한몽불번(一境淸閑夢不煩)

삼라만상이 부처 말씀인데 해는 이미 노을
솔바람에 비단달 뜨니 사립문을 닫네
숨어 살며 스스로 얻는 것은 숨어 사는 즐거움
오로지 맑고 한가로운 경지에 드니 잠자도 꿈을 꾸지 않네

양성법사는 법명은 혜능(慧能)이며 울진 원남연 금매리 태생이다. 신선이 품에 드는 꿈을 꾼 뒤 잉태를 했다 하여 속명을 몽선(夢仙)이라 했다. 12세때 불영사에서 수계(受戒)를 한 뒤 8년간 불경을 통달하고 척조(尺照)대사에게서 배워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이후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니 사람들은 그를 도인이라 우러렀다. 어느 날 문득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다가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부질없이 떠돌아 무엇을 찾겠는가? 근본을 찾아 바탕을 궁구하는 것만 못하구나”라고 말하며 불영사로 돌아왔다. 김창흡을 만난 것은 그때였다.

2002년-2003년 KBS2 드라마 '장희빈'에 등장한 인현왕후(박선영 역)


창흡은 양성법사에게 당쟁의 술수와 음모가 판치는 아비규환의 조정 현실을 설명하며 개탄했다. 특히 지혜와 덕성을 갖춘 인현왕후가 희빈의 책략에 내몰린 일은 이 땅의 대의가 사라지고 사리분별이 흩어진 가운데 빚어진 참극이라고 사자후를 토했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양성법사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실은, 소승이 왕후에게 큰 죄를 지은 일이 있습니다.”

창흡은 의아해서 물었다.

“깊은 산중을 떠도는 승려가 어떻게 왕후와 관련이 있을 수 있었소?”

법사는 대답했다.

“저는 원래 천축산의 신령으로 인간이 되고싶어 태몽 속으로 들어왔사옵니다. 오랫 동안 심산유곡에서 수행하여 제가 읊어드린 염불삼매시에 있는 몽불번(夢不煩, 꿈을 꾸지 않음)의 경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스스로 꿈을 꾸지 않는 대신 여인의 꿈 속에 들어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몽선(夢仙)이 되었습니다. 장희빈이 빼어난 자색(姿色)을 무기로 궁궐의 윤기(倫紀)를 어지럽히는 것을 알고, 인현왕후의 꿈에 들어가 현종(숙종의 부친)으로 환신(換身)하여 장희빈이 예전에 짐승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는데, 왕비가 이 꿈을 왕에게 고하자, 숙종은 애인을 讒訴)하는 질투심으로만 받아들여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일을 바로잡으려다 더욱 그르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왕후는 서인으로 내쫓기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런 일을 진실로 하였단 말이오? 남의 꿈에 드는 일이 어찌 가능하단 말이오?”

“말씀으로 설명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옵니다.”

“스님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소이까?”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한번 왕후의 꿈 속에 틈입하셔서 일을 바로잡으면 되지 않소?”

“인현왕후가 이제 해명할 기회가 없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2002년-2003년 KBS2 드라마 '장희빈'에 등장한 인현왕후(박선영 역)


3년뒤인 1694년. 인현왕후가 머물러 있던 안국동의 감고당(感古堂). 폐서인이 된 민씨는 외할아버지 송준길(1606-1672)의 시를 기억해내 읊조렸다.

천수오유감(天數吾猶憾)
인모혹후군(人謀或後君)
고신일국루(孤臣一?淚)
쇄향북귀운(灑向北歸雲)

하늘의 운수가 내겐 근심 뿐이어서
사람은 중상모략하고 임금은 뒷전으로 내쳤네
외로운 신하가 움켜쥔 눈물 한 줌
북쪽 임금 계신 곳을 향해 던져 뿌립니다

어찌 외할아버지의 심경이 지금 나의 심경과 이리도 같은가.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왕은 아직 기별도 없다. 장씨 무리들이 나를 죽이라고 왕에게 날마다 속살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토록 누추하게 생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어 깨끗해지리라. 인현왕후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장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시 한편을 더 읽는다. 유명한 ‘기몽(記夢, 꿈을 기록함)’이란 시이다.

평생흠앙퇴도옹(平生欽仰退陶翁)
몰세정신상감통(沒世精神尙感通)
차야몽중승회어(此夜夢中承晦語)
각래산월만창롱(覺來山月滿窓瓏)

평생 우러른 것은 퇴계선생
세상 떠나셔도 정신은 여전히 느끼고 통하니
오늘밤 꿈 속에 주자말씀 전해들었네
느낌이 오니 산의 달빛이 창문 가득히 환하네

꿈 속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외할아버지처럼 나 또한 꿈 속에서 왕을 한번 더 만나보고 죽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민씨는 살풋 잠이 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꿈 속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마마의 감수(憾數, 슬픈 운수)는 곧 끝이 나옵니다. 부디 은인자중하시어 옥체를 귀히 여기소서. 사흘만 더 기다리면 기다리던 소식이 올 것입니다.” “노인은 누구시오.” “저는 그저 떠돌이 중일 뿐입니다.” “그래도 함자를 알려주시면...” “저는 양성 혜능이라 하옵니다.” 사흘 뒤, 왕후가 복위되였으니 입궐하라는 어명이 내려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왕비가 된 장옥정은 화근을 없애고 싶었다. 남인들은 서인 측에서 폐비 민씨를 복위하려 한다고 고발했다. 숙종은 오히려 남인의 우두머리였던 우의정 민암을 죽이고 서인에게 재집권 기회를 준다. 이른 바 갑술환국이다. 이때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장씨는 희빈(후궁)으로 강등된다. 숙종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인현왕후를 내친 뒤 문득 후회가 생겨난 왕은 궁을 거닐다 민씨가 있던 궁의 부엌에서 일하는 무수리 최복순을 만났다. 그녀는 민씨와 함께 궁에 들어왔던 고아소녀로 왕후의 무사 복귀를 기원하고 있었다. 갸륵한 마음에 감동한 숙종이 승은을 베풀어 1693년 그녀는 숙원(淑媛)이 된다. 갑술환국 이후에 아들 연잉군 이금(나중에 영조)을 낳았고 나중에 숙빈에까지 오른다. 이 숙빈최씨가 장씨의 행위와 품평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들과 인현왕후의 억울함을 증명하는 사례들을 숙종에게 계속 제공해주었다. 그 결과로 인현왕후에게, 외할아버지가 꿈꾼 ‘각래산월만창롱(覺來山月滿窓瓏, 느낌이 찾아와 산 달빛이 창에 환하게 들어차는 일)’이 실현된 것이다.

불영사 의상전에 있는 인현왕후 초상.


인현왕후는 꿈 때문에 곤역을 치른 적이 있었는지라, 몇 해 동안 자신의 복위를 알려준 예언몽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자진(自盡)까지 결심한 그녀에게 삶을 가져다준 고마운 백발선사를 잊을 수 없었다. 1698년 왕후는 전국의 사찰에 명을 내려 양성 혜능이라는 승려를 찾아 그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궁궐로 보내도록 했다. 그녀는 울진 불영사에 있는 양성법사임을 알아냈다. 그는 이미 2년 전 입적을 했다. 왕후는 불영사 사방 10리 안에 있는 산과 전답을 사찰에 시주했다. 꿈에서 꿈으로 이어진 인연이 오롯하고 묘하다.

1867년 4월 승려 유찰은 불영사에 있는 인현왕후 원당의 상량문을 쓴다.

“본사(불영사)의 산천초목과 승려들이 두루 성후(聖后, 인현왕후)의 은덕을 입어서 지금까지 지탱해오고 있다. 마음 속에서 그리워한 것이 몇 년이며 잊을까 조바심을 낸 것은 또 얼마 만이겠는가. 감히 좋은 해 좋은 달 좋은 날을 가려 절의 서쪽 깨끗한 곳에 원당을 건축하고 억만년 동안 성덕이 무강하고 나라가 평안하기를 봉축한다.”

# 스토리 메모

양성법사에 관한 기록은 울진 불영사 남동쪽에 있는 부도 비문에 나와 있다. 울진군지와 부도 안내간판에 나와있는 생몰연도(1425-1516)는 모두 잘못이다. 비문에 적힌 입적 연도인 병자년은 1696년이다. 비문을 지은 최석정(1646-1715)과 비문을 중간에서 청탁한 양성법사의 지기(知己)인 홍만종(자는 宇海, 1643-1725)의 생존 기간을 고려하면 그렇다. 불영사 의상전 상량문에서 ‘인현왕후원당’이라는 묵서명이 나와, 이 꿈의 인연이 전혀 근거없는 일이 님을 확인해주었다. 김창흡이 불영사에 머무른 때와 양성법사가 이 절에 돌아온 때가 비슷한 것은 사실이나 두 사람은 만남은 상상력에서 나왔다. 불영사는 천축산 한 자락과 광천(光川)이 서로 휘감아도는 산태극 수태극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의상대사가 연못 속에 있는 용을 쫓아내고 지었다 한다. 서쪽 산에 있는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니 그것이 불영(佛影)이다. 여름이면 연못 속 어리연꽃, 가을이면 피단풍이 서럽도록 아름답다. 인현황후의 꿈 속을 넘나드는 ‘몽선(夢仙)’이 거닐던 마당엔 만상을 모두 비춰 그늘이 없다는 무영탑이 소슬하게 섰다.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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