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미지의 왕국, '가야'의 철기병은 얼마나 강했을까?

신라 멸망직전까지 몰고 갔던 가야의 '철기병'
6가야 부족국가 연맹체로 700년 이상 존속?

금관가야의 철기 유물 모습. 검과 갑옷, 마갑 등이 발굴됐다. 당시로선 전선 선봉에서 지금의 전차와 같은 역할을 하던 막강한 철기병을 다수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사진=부산 복천박물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지난달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에서 서기 6세기 중엽 가야연맹의 맹주국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아라가야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 유적이 발견되면서 미지의 왕국 '가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보통 부족 연맹체 국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왕정체제를 수립한 백제와 신라의 압박에 차례로 허물어져 갔다고 알려진 6세기 가야의 국력이 예상보다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야의 실체와 멸망에 대한 학계의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가야는 연맹체 왕국으로 초기 삼국시대에 철기문명을 중심으로 한반도, 중국, 일본 일대의 해상교역을 주도했고, 강력한 철기병을 바탕으로 신라를 여러번 패퇴시키기도 하는 등 강력한 국가였다가 백제와 신라의 압박 속에 6세기 중엽에 이르러 신라에 흡수된 연맹체제 정도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교과서적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미지의 왕국이기도 하다.

일단 가야와 관련한 초기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기록들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서기 1세기 전후 초기 신라와의 영토 분쟁에서 가야는 계속해서 승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금관가야의 별칭인 구야국의 왕위를 두고 김수로왕과 석탈해가 왕권다툼을 벌이다 석탈해가 패배, 신라로 들어가 탈해이사금이 됐다고 알려져있으며, 이후 서기 77년, 94년, 96년, 115년 등 잇따라 신라와 분쟁 및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마다 가야가 승리했다고 나온다.

지난달 7일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가야리에서 발견된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사진=문화재청)

이런 가야의 힘의 원천은 '철기'로 알려져있다. 경남 양산 등지의 풍부한 철을 활용해 대규모 제철공장을 지니고 있던 가야는 중국, 일본 등지에도 철을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제철국가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가야의 제철 유적지는 철광석의 채굴부터 제철, 무기 및 기타 철제 생산품을 만드는 전 공정이 포함돼있는 유적으로 제철공정 전반을 모두 볼 수 있는 유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서기 3세기에는 가야 연맹에서 이탈한 소국들이 뭉쳐 포상팔국이란 새로운 연맹을 결성, 가야를 침공했으며 이때는 신라와 연합해 포상팔국의 난을 평정했다는 기록도 나오는 등 신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신라와는 전쟁과 외교를 주고받았던 이웃사이로 그려지는데, 문화적, 지리적 차이가 크지 않아 백제와는 다른 관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초기 한반도 일대 상황을 알려주는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신라지역인 진한(辰韓)과 가야 일대지역인 변한(弁韓)지역은 언어와 법속, 의식주 등이 같고 제사풍속 등만 달랐다고 기록돼있다. 폐쇄적인 신라의 골품제도 하에 구 가야계 왕족들이 진골로 편입됐고, 가야계인 김유신이 삼국통일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정치체제 외에 문화적, 인종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통 '6가야 연맹'이란 표현을 잘 쓰지만, 일체감을 지닌 연맹국가였는지, 개별 성읍국가들의 동맹체였는지, 하나의 왕국이었는지 가야의 정확한 체제는 알려져있지 않다.(자료=두산백과)

이런 정황들로 봤을 때, 가야가 부족국가 연맹체에 그쳤으며 사회발달이 미진해서 신라에 흡수됐을 것이란 종래의 주장은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가야 왕성의 규모나 가야 고분 등에서 출토된 철기의 정교함, 병기들의 규모로 봤을 때 결코 신라나 백제보다 후진적인 사회가 아니었으며 이보다는 다른 외적인 요인에 의해 일정 시기부터 국력이 급속도로 꺾이게 됐을 것이란 설이 힘을 얻게 됐다.

여기에 맞춰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학설이 광개토대왕의 남정에 따른 전기 가야연맹의 패망설이다. 당시 가야가 백제, 왜 등과 손을 잡고 신라를 침공,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함락직전까지 가자 광개토대왕이 구원군을 파견해 이들을 물리쳤다는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에 의거한 학설이다. 이후 광개토대왕이 대대적인 남정을 펼쳐 금관가야 및 가야 일대를 완전히 휩쓸고 지나가면서 국력이 꺾이게 됐고, 이후부터 신라에 국력이 뒤지기 시작했을 것이란 설이다. 이 학설대로라면, 가야의 철기병은 당시 중원 일대에서도 명성을 떨치던 막강한 고구려 철기병에 밀려 패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 거리'에 조성된 가야 철기병 조형물. 광개토대왕 남정 때 고구려 철기병과 대대적인 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사진=한국관광공사)

이 광개토대왕의 남정설은 유력한 학설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광개토대왕의 대대적 남정이 가야 전체 지역에서 벌어졌는지는 미지수다. 금관가야가 있던 김해 일대는 큰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편으로 후기가야의 중심국으로 알려진 대가야, 즉 반파국의 경우에는 백제가 고구려에 도읍인 한성을 뺏기는 혼란을 틈타 전라도 일대 섬진강 지역을 점거하기도 하는 등 모든 가야가 축소 시점에 들어선 시기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야사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면서 실제 가야의 실체가 나와야 확실한 학설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야라는 이름 역시 실제 이게 국가명인지, 다른 것을 상징하는지 불투명하고 가야도 알려진 것처럼 6가야 연맹체였는지 이보다 국가수가 훨씬 많았는지, 도시국가형태였는지 불분명할 정도로 모든 것은 베일 속에 싸여있다. 분명한 것은 가야가 절대로 부족국가 연맹체 수준에서 끝난 나라는 아니었을 것이란 점이다. 단순히 교과서적 설명대로 느슨한 부족국가 연맹체가 700년 이상 지속된 나라가 다른 국가들과 연합해 철기병을 이끌고 신라를 멸망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었을까? 가야의 비밀은 앞으로 계속될 유물 탐사에 의해 조금씩 벗겨질 전망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