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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관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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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배우 김희애

[라임라이트]관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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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 돕는 女 사장역…당당한 여성 그리려 강한 톤 연기
"이런 재판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어요" 뜨거운 사명감보다 자연스런 유대감에 초점
"꾸소따레(빌어먹을 놈)" 꾸짖는 연기, 상대 日 배우 반성에 자신감 얻어

"연기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지 않던가요?" 배우 김희애(51)는 질문부터 했다. 불만은 없다.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려는 듯했다. "겁도 없이 어려운 역할을 맡았지 뭐예요. 보여줄 게 많아서 기대가 컸는데, 막상 하려니까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영화 '허스토리' 속 문정숙이다. 1990년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재판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부산 지역의 여행사 사장.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원고단 단장을 맡아 재판을 지원하고, 일본 법정에서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일본어로 통역한다. 아흔 살에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김문숙씨의 발자취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요. 대사가 어찌나 많던지(웃음). 골프선수 박성현(25)처럼 훈련했어요. 한동안 변변한 코치도 없이 직접 녹화한 스윙 동영상을 보며 연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처럼 사투리와 일본어를 녹음하면서 수정을 반복했죠. 사투리 지도교사도 거의 매일 만났어요. 부산 출신 지인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실습도 했죠. 일본어는 너무 연습해서 지금도 대사가 생각나요. 처음에는 한글로 써 있는 일본어도 읽지 못했어요. 음악처럼 리듬과 억양을 익혀야 외워지는데, 한 문장도 기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나중에는 악몽까지 꿨어요. 꿈에서 지인들이 일본어로 말을 거는데, 입을 떼지 못했죠."

-목소리가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강한 톤이에요.
"당당한 여성으로 그리려고 평소보다 힘을 많이 줬어요.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 사업가가 많지 않았어요. 타고난 기질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그걸 목소리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하루하루가 힘들더라고요.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죠. 툭하면 달력을 꺼내 들고 촬영하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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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위안부 피해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이런 재판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어요. 뉴스를 보지 않는 편이거든요.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랬던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뜨거운 사명감을 요구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김문숙 회장님도 그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할머니들을 도와주셨을 거예요. 그 진심을 과장되지 않게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김해숙(63), 예수정(63), 문숙(64) 등 다른 배우들도 같은 마음이었고요. 사사로운 욕심 없이 서로를 배려한 덕에 한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자연스러운 유대감 형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으로 보여요.
"맞아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배운 것도 없이 상처만 받으신 분들이에요. 실제로 뵈면 얼마나 말씀을 잘 하시는지 몰라요. 서로를 위로하며 한마음이 됐기에 가능해졌다고 생각해요. 정말 인간적이지 않나요. 이 영화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지점을 높게 평가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하지만 사과를 받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인간들의 투쟁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싸움이니까요."

-법정에서 할머니들의 증언을 일본어로 통역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가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나타났어요.
"그렇게 그려지길 바랐어요. 모든 배우들이 스스로 부각될 여지가 있는데도 큰 그림에 맞춰서 연기한 덕이에요.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처럼 하나로 뜻이 모아졌죠. 현장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어요. 검사를 연기한 요코우치 히로키가 일본인이에요. 할머니들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모습과 제가 '꾸소따레(くそたれㆍ빌어먹을 놈)'라고 꾸짖는 연기를 보며 반성했다고 해요.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무안했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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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은 셈이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배우로서 계속 나아지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 마음을 내려놓아도 자극은 와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나도 저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고는 하죠. 최근에는 '아이 캔 스피크' 속 나문희(77) 선생님이 그랬어요.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라고요. '나도 저 나이에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고. 부단히 노력하는 20ㆍ30대 배우들을 보면서 후회하기도 해요. 그 나이에 주먹구구식으로 일했거든요. 이렇게 오래할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열심히 했을 텐데. 그래도 기회는 많이 남아 있어요. 제 또래의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잖아요. 니콜 키드먼(51), 줄리아 로버츠(51) 등이요. 이들이 갑자기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면 많이 슬플 거예요."

-오래 일하려면 자기관리가 가장 중요할 텐데요.
"하루살이 인생이에요(웃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서 몇 가지 일에 노력을 기울이죠.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아요. 대신 스스로와 약속을 해요. 새벽 5시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고 라디오부터 켜요. EBS에서 하는 영어 교육을 3시간 동안 들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동네 한 바퀴를 걸어요. 집에 돌아오면 직접 사온 채소와 고기로 음식을 해요. 배우이기 전에 대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두 아들을 둔 엄마잖아요. 그렇게 정신없이 아침을 보내다 보면 꾸밀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운동복을 입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바쁘죠. 하지만 그런 삶이 연기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삶에 균형도 가져올 수도 있고요."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잘하려는 욕심은 없어요.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도 않고요. 나이를 먹으니까 치매 같은 게 올까봐 걱정되더라고요. 정신이 없어진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무섭잖아요. 그래서 늘 사고하면서 뇌 운동을 해요. 연기를 오래 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 건강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에요. 살아보니 그게 제일이더라고요(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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