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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한국사에서 요동을 마지막으로 점령했던 때가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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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년 제1차 요동정벌에서 요동성 점령
발해멸망 이후 400여년만의 첫 요동정벌
이후 최영, 정도전의 '요동정벌론' 기초가 되기도

(사진=KBS드라마 '정도전' 장면 캡쳐)

(사진=KBS드라마 '정도전'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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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보통 우리나라가 요동(遼東)지역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발해가 멸망했던 926년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는 틀린 말이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고려 말인 1370년 고려왕조는 요동정벌을 통해 짧은 기간동안 요동성을 점령한 적이 있다. 이는 당시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맞물리며 이뤄낸 쾌거 중 하나였다.

공민왕은 1351년 즉위 하면서부터 원나라에 빼앗긴 쌍성총관부와 요동에 대한 탈환의지를 내비쳤다. 고려사 공민왕 원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모든 관원들에게 분부해 활 1개, 화살 50개, 검 한자루, 창 한자루를 갖추게 한 다음 사열했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당시 고려는 1259년 몽골 원나라와의 장기항전 끝에 결국 화의키로 한 다음, 북방 영토의 상당부분을 빼앗겼다. 그중 오늘날의 평안도 일대였던 동녕부는 1290년 반환됐지만, 쌍성총관부는 100년 가까이 돌려주지 않고 계속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결국 공민왕은 1356년 병력을 일으켜 쌍성총관부를 수복했으며, 이 전쟁에서 내응한 이자춘과 이성계 부자가 고려로 내투했다. 이자춘은 동북병마사가 됐고 이 직함은 이자춘이 죽고나서 이성계에게 내려졌다. 고려의 무장 이성계의 정계진출도 공민왕의 영토수복 전쟁과 맞물려있었다. 이후 공민왕은 요동 탈환을 위해 단계적으로 준비를 시작, 1357년 압록강 이서 지역의 원나라 역참들을 공격해 점령하며 요동성 공략을 준비했다.
공민왕 때 무력정벌을 통해 수복된 영토. 쌍성총관부를 비롯해 원나라에 빼앗겼던 동북지역 상당부분이 100년만에 회복된다.(자료=국사편찬위원회)

공민왕 때 무력정벌을 통해 수복된 영토. 쌍성총관부를 비롯해 원나라에 빼앗겼던 동북지역 상당부분이 100년만에 회복된다.(자료=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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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368년 명나라가 원나라를 중원에서 몰아냈고 원나라는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 명나라와 대치하면서 원나라의 요동 지배력이 현저히 약해졌다. 이때 공민왕은 명나라와 원나라 사이에서 저자세를 취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표방하면서도 요동 공격을 계속 준비, 결국 1370년 1월에 1만5000여명에 이르는 원정군을 파견해 요동을 공략했다. 이를 '1차 요동정벌'이라 부른다. 이때 참전한 이성계는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으로 추정되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을 함락시키며 큰 전공을 세운다.

얼마 후 그해 10월, 요동성을 중심으로 기사인테무르(奇賽因帖木兒)가 군대를 일으켜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고려로 진격한다고 선포한다. 기사인테무르는 원나라 말기 조정을 뒤흔들던 기황후의 오라버니로 고려에서 친원세력의 우두머리였던 기철의 아들이었다. 공민왕이 1356년 기철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고려에 있던 그의 일가 친척들을 모두 제거했고, 기사인테무르는 여기에 반발해 군대를 일으켰던 것.

하지만 그의 군대는 고려 접경에서 패배하고, 공민왕은 이참에 요동 정벌을 목표로 당시 도통사 시중 이인임을 필두로 이성계, 임견미 등 야전에서 뼈가 굵은 장수들을 대거 출격시켰다. 부교를 만들어 압록강을 건넌 후, 3000여명의 경기병 부대를 앞세워 하루 100여리씩 빠르게 이동하며 요동성에 도착하자 기사인테무르는 직접 병력을 이끌고 성밖에 나왔으나 대패했다. 요동성도 곧이어 함락되면서 고려왕조는 발해가 멸망하고 440여년만에 무력으로 요동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이성계가 1차 요동원정 당시 크게 활약해 함락시켰다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의 모습.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이 위치했었다고 추정된다.(사진=고구려발해학회)

이성계가 1차 요동원정 당시 크게 활약해 함락시켰다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의 모습.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이 위치했었다고 추정된다.(사진=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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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격렬한 전투 도중, 성내 군량고에 불이 나면서 고려군은 성을 점령했지만 계속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고려 본국의 보급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고려군은 점령 직후 요동성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북만주 일대를 지배하던 또다른 원나라 출신 군벌인 나하추(納哈出)와의 접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본국으로 물러났다고 한다. 전투보다 복귀 때 굶어죽은 병사들이 더 많았다고 할 정도로 보급이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비록 보급 문제로 물러서고 말았지만, 이때 요동정벌 성공은 향후 정권들에게도 요동점령에 대한 큰 자신감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게 됐다. 훗날 최영이 1388년, 2차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5만의 병력을 파견하려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게 되는 일이나 정도전이 집권 후 역시 요동정벌을 꿈꾸며 진법 개혁을 실시한 일은 모두 이 요동정벌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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