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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기억해' 이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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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피해 여교사역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배역에 몰두하느라 노출신 고민할 겨를 없어
'당신자신과…' 소민정 역할 연기인생 전환점…상처 때문에 의심 많지만 해맑고 사랑스러워
영화 찍으며 새롭고 다양한 나의 모습 발견…밝은 배역 맡고 싶어 "언젠가 기회 오겠죠"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년)'에 나오는 소민정(이유영)은 홍상수 감독(58)이 연출한 스물두 작품의 여성 배역 가운데 가장 독특하다. 화가인 김영수(김주혁)와 다투고 자취를 감추더니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쌍둥이거나 닮은 사람일 수도 있다. 알면 알수록 궁금증을 유발하는 얼굴로 미스터리와 판타지 사이를 오간다. 지난 16일 만난 이유영(29)은 소민정을 보는 듯했다. 얼굴은 밝았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소속사인 풍경엔터테인먼트의 송종선 대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체중이 38㎏까지 빠졌다. 오늘도 긴장해서 청심환을 두 알 먹고 왔다"고 했다. 연인의 갑작스런 죽음과 포털 사이트의 연관검색어 '노출.' 그녀를 배우로 발탁한 '봄(2004년)'의 조근현 감독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주연한 영화 '나를 기억해'를 홍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체를 마주하기가 두려웠을 테다.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은 듯했다.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고, 차분한 말투로 속내를 조금씩 드러냈다.
-유약하거나 어두운 배역을 자주 맡았어요. 나를 기억해에서 연기한 한서린도 학창시절 성범죄 피해를 입은 교사고요.
"'왜 사연이 있는 역할을 자주 만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얼굴인가 봐요. 가만히 있으면 차가운 느낌도 나고요. 다양한 면면을 보여줄 수 있어서 연기에는 도움이 돼요. 하지만 밝은 배역도 한 번쯤 그려보고 싶죠. 나중에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나를 기억해는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이 어디론가 숨으려 하거나 스스로를 부정하려고 하다 마음을 고쳐먹는 이야기에요. 최근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과 맞닿는 면이 있어요.
"피해를 입어도 당당하게 맞서 싸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충분히 공감이 됐어요. 인생을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거든요. 가해자가 어리거나 사연이 있어도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이런 범죄가 청소년에게까지 미치는 줄 몰랐어요. 영화에서 약혼자인 우혁(강지섭)이 청소년 성범죄 피해자들을 가리키며 '찍힐만하니까 찍힌 거겠지'라고 하는 대사가 있어요. 처음에는 잔인하게 들렸는데,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본적으로는 우리 교육의 문제잖아요. 다만 여자도 잘못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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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나 '간신'에서 불필요한 노출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부당하다고 여긴 적은 없어요. 그저 연기라고 생각했죠. 다만 봄의 경우 제작진이 추가 촬영을 요청해서 거부한 적이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불필요해 보였거든요. 조근현 감독이 신인 배우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저는 송종선 대표와 함께 만나서인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어요. 만일 혼자 만났다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촬영하면서 그런 시선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배역의 감정에 신경을 쓰느라 노출에 대한 부담도 고민할 겨를이 없었죠."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연기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고 봐요. 연기한 소민정과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비슷한 면이 있겠죠. 홍상수 감독이 배역을 만들면서 배우의 모습을 절반 이상 넣으니까요. 술자리에서 정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가끔은 촬영장에서 몇 가지를 물어보고 대사에 반영하기도 했죠. 잠을 푹 자지 못해서 불그름하게 충혈된 눈으로 촬영장을 찾은 적이 있어요. 대본을 다시 쓰더라고요. 김영수와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는 신을 다투는 신으로 바꿔버렸어요. 바뀐 대사를 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영화가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걱정됐어요(웃음)."

-소민정이 다른 사람인 척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나요.
"처음에는 쌍둥이라고 인식했어요. 촬영 직전에 대본을 받기 때문에 배역을 제대로 알 수 없었거든요. 대사를 읽으면서 정말 미친 여자를 연기한다고 생각했죠(웃음). 촬영을 마칠 즈음 소민정이 거짓말을 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골목길에서 우는 장면을 참 좋아해요. 상처가 많다는 걸 잘 보여주거든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저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령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도 정말 소주를 마시고 연기하거든요. 기운이 좋아진 상태에서 대사를 하는 제 얼굴이 참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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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기를 통해 스스로를 알아간다고 생각하나요.
"네. 실존하는 사람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어요. 그게 어느 순간 몰랐던 제 모습으로 인식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표정, 말투, 습관 등이요. 이야기까지 공감이 되니까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죠. 다만 문어체에 가까운 대사를 외우는 건 힘들었어요. 롱테이크 신은 많은데 대본이 촬영 당일에 나오니 제대로 대사를 숙지하고 연기할 수 없었죠. 영화에 다른 곳을 응시하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몇 차례 나와요. 대사가 기억나지 않아서 떠올리려고 애쓰는 모습이에요(웃음)."

-홍상수 감독의 신작 '풀잎들'에도 출연하던데.
"촬영 전날 밤 아홉 시에 전화를 주셨어요. 내일 와서 연기를 좀 해줄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로 참여했죠.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요."

-소민정과 닮은 배역이 아닐까 기대돼요.
"소민정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죠.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많이 의심하는 사람이에요. 제게도 분명 그런 면이 있어요. 누군가를 만날 때 경계하거나 조심스러워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무척 해맑아요. 사랑을 많이 받고 싶어 하죠. 그런 면면이 모두 담겨서 소민정이 가장 소중한 배역으로 기억되는 듯해요. 물론 제 모습에 허구가 입혀졌다고 봐야겠죠. 그렇게 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게 참 좋아요. 다양한 영화에서 그런 희열을 더 많이 느껴보고 싶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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