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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미소는 진짜 'N포세대'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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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운 감독의 블랙코미디 '소공녀'

[이종길의 영화읽기]미소는 진짜 'N포세대'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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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아?" "응?" "쌀 좀 남는 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 부탁하고도 멋쩍은지 씩 웃는 미소(이솜). 빈털터리는 아니다. 친구 재경(김예은)의 집을 청소하고 4만5000원을 받았다. 그녀는 걸어서 동호대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간다. 이쯤 되면 누가 봐도 짠순이. 그런데 아늑한 기운이 감도는 바를 찾는다. 홀로 의자에 앉아 느긋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마신다. 담배연기와 함께. 월세가 부족해도 포기하지 않는 위안거리다.
'소공녀'는 N포세대의 청춘이 가진 문제를 반영한 블랙코미디다. 미소는 돈이 없어 월세방에서 나온다. 친구들의 집에서 묵으며 서울 생활을 이어간다. 어려운 여건에도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각박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그녀를 반기는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연애, 집, 인간관계, 희망 등을 포기했다. 제각각 추억에 잠겨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머니즘이나 인본주의는 사회 기본원리로 대두되는 법이 없다. 자본이 중심인 사회 체제를 보완하는 이념이나 지향 정도로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이 중심인 질서를 그대로 두고 사람의 가치를 옹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공녀는 이 지점을 가리키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소와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N포세대의 어려움을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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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친구 한대용(이성욱)의 넋두리가 대표적이다. 결혼을 위해 아파트를 장만한 그는 이혼하고 혼자 지낸다. "누나, 여긴 못 벗어나. 집이 아니고 감옥이야. 여기 한 달 나가는 돈이 얼마인줄 알아? 원금 좀 포함해서 100만원이다. 그런데 월급이 190만원이거든. 그걸 얼마나 내야 하는 줄 알아? 20년." 푸념은 집과 월급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떠나버린 아내를 향해 있다. 이혼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방에 틀어박혀 지낼 정도다. 아내와 함께 살았다면 집은 아늑한 보금자리일 것이다.

N포세대를 위로하고 싶다면 초점은 팍팍한 생활에 맞춰져야 한다. 아직 재산을 모으지 못한 청년 세대에게 부동산은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정권에 관계없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일관되게 주택 가격의 안정보다 상승 유도에 발맞춰왔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막대한 대출 잔액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기고 깡통 아파트가 속출한다. 이런 파국을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결국 주거 안정이 아닌 거래 활성화를 부추기는 정책이 이어졌다.

미소 또한 부동산 폭등의 피해자다. 전세 대란과 함께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찾아오자 주택 소유자들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전세 물량이 품귀 현상을 빚어 전세금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월세의 경우 금융비용은 전세보다 세 배 정도 더 든다. 월세를 지불하고 나면 가처분소득이 급격히 줄어들어 그만큼 생활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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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이런 처지를 비관하는 법이 없다. 친구 김록이(최덕문)가 결혼하자며 귀찮게 굴자 떠돌이 삶의 의미를 분명히 밝힌다. "너 갈 데 없다며."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미소는 가난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히피족을 연상하게 하는 옷차림과 큰 캐리어 백이 이솜(28)의 큰 키, 마른 체형 등과 어우러져 세련된 느낌까지 풍긴다. 전고운(33) 감독은 "여성 캐릭터가 백발로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을 떠올렸는데, 그런 비주얼만 보여줘도 카타르시스가 오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씩씩한 그녀는 우리 시대의 신여성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하지만 N포세대를 대변한다고 보긴 어렵다. 가장 중요한 삶의 치열함이 배제돼 있다. 정규직에 대한 갈망도,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도 찾을 수 없다. 그저 가사 도우미로 활동하고 일당을 받는 삶에 만족할 뿐이다. 그래서 한강 앞에 텐트를 치고 사는 결말은 너무나도 작위적이다. 꿈꾸지 않는 자에게 위로받아야 할 만큼 우리 삶이 최악은 아니지 않은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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