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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조선시대 화포병들은 왜 화장실 바닥을 긁으러 다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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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기전'에 등장한 화약제조 모습(사진=영화 '신기전' 장면 캡쳐)

영화 '신기전'에 등장한 화약제조 모습(사진=영화 '신기전'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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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조선왕조실록에 심심찮게 나오는 기사 중 하나가 병사들이 마음대로 집에 들어와 화장실 바닥이나 가마 아래, 담벼락, 구들장 밑에 흙을 긁어갔다는 내용이다. 이 병사들은 당시 화약을 제조하는 염초장(焰硝匠)이 데리고 다니는 병사들로 유사시에서는 화약과 화포를 담당하는 병사들이었다.
세종실록에 세종 30년 2월 기사 중 하나에는 이들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있다. 성균관 생원인 김유손 등 유생들이 상소문을 올렸는데, 염초장이 문묘(文廟)에까지 밀고 들어와 흙을 퍼갔다는 내용이다. 실록에는 "염초약장(焰硝藥匠)이 흙을 판다고 핑계하고 문묘에 들어와 눈을 부라리고 팔뚝을 걷고서 관노(館奴)을 구타하므로, 신 등이 대의(大義)로써 몇 번이나 타일러도 들으려 하지 않고..."라고 나와있다.

성균관 문묘까지 들어가 팔 정도니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는 것은 예사였다. 세종실록 뿐만 아니라 이후 조선시대 내내 민가나 관가에서 흙을 긁어가려는 염초장, 병사들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하인들간의 시비 이야기가 제법 등장한다. 심지어 궁궐 화장실, 담벼락도 주기적으로 이들에게 개방했다. 이는 모두 당시 너무나 구하기 어려웠던 '염초(焰硝)'를 얻기 위해서였다.


흑색화약. 조선시대에는 황과 목탄, 염초 3가지 물질을 혼합해
 만들었으며, 염초는 흙에서 추출하는 취토법으로 제조해 대량생산이 매우 어려웠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흑색화약. 조선시대에는 황과 목탄, 염초 3가지 물질을 혼합해 만들었으며, 염초는 흙에서 추출하는 취토법으로 제조해 대량생산이 매우 어려웠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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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초는 당시 전략자산인 화약의 주 원료가 되는 질산칼륨을 뜻한다. 그때만해도 질산칼륨은 흙에서 얻었으며, 이를 '취토법(取土法)'이라 불렀다. 특히 화장실로 쓰인 곳의 바닥은 질산암모늄이 형성돼 흙에 섞여있기 쉬워서 염초를 구하고자 하는 염초장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이런 흙을 한무더기는 모아야 겨우 밥그릇 하나 정도 되는 염초를 얻을 수 있었으므로, 각 집의 화장실 바닥은 거의 다 긁고 다녀야만 했다.

조선시대에는 흑색화약을 만드는 3요소인 황과 숯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질산칼륨 제조는 매우 어려웠다. 최무선 장군이 고려말 원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진 취토법 역시 매우 힘들게 유입됐으며, 중국은 명나라 때 질산칼륨 제조법이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가기밀이라 조선에 알려주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염초 수입 또한 상당히 제한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조선왕조는 조선 초기 이후 화약무기는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했지만, 화약이 늘 부족했다. 특히 임진왜란을 맞이해 그 수량이 더욱 부족해졌데, 이는 국초 이후 병기창인 군기시(軍器寺)에 비축해둔 염초 2만7000근이 한양이 함락되면서 한방에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선조의 갑작스런 파천으로 한양일대 치안이 엉망이 됐고, 궁궐부터 불이 나기 시작해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군기시도 불타면서 어렵게 모은 염초는 한순간 날아간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늘날에는 화학적으로 만드는 질산칼륨. 주로 화학비료로 쓰인다.(사진=위키피디아)

오늘날에는 화학적으로 만드는 질산칼륨. 주로 화학비료로 쓰인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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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염초 보급 확대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임금인 선조 역시 염초제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전투 중 생포한 왜인들에게 염초 제조법을 탐문시키고, 중국에서 바닷물로 염초를 제조하는 신기법을 배워오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결국 선조 28년에 임몽(林夢)이라는 군관이 이 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 선조가 직접 그의 품계를 크게 올려주기도 했다.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전라좌수영의 경우에는, 뛰어난 화약제조가로 알려진 이봉수 장군이 3개월만에 염초 1000근을 제조, 전투에 보탰다는 내용도 나와있다.

광해군 집권기에도 초반에는 주로 전쟁대비를 위해 염초의 수입에 신경 쓴 내용들이 자주나온다. 중국이나 요동지역에서 수입하고, 제조에도 힘을 쓰는 등 노력하지만 광해군이 궁궐공사에 열정을 쏟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무기가 아닌 궁궐의 청기와를 올리기 위한 재료로 쓰이기 위해 수입을 늘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청나라가 요동을 완전히 장악해 명과의 육상 교역로가 막히면서부터는 더욱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에 들어서서 취토법이 더욱 발전해 안정적 수급은 가능해졌지만, 이후 200년 가까이 대외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염초와 화약은 각 군영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다시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 병인양요 때부터였지만 화장실 밑바닥을 긁어 만든 흑색화약이 근대전에서 완전히 무용지물임을 조선군은 곧 깨닫게 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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