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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무섭다, 연기는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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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옥' 속 언더보스 연기 김혜수

배우 김혜수[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_강영호작가 제공]

배우 김혜수[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_강영호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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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탈색한 머리·붉은색 가죽 재킷 강렬하지만 과한 느낌
수동적 배역 설득력 부족 비판 겸허히 수용
데뷔 이후 기피했던 액션 새로운 도전
영화 '밀양' 전도연 연기 보며 연신 감탄
"욕심 내지 않겠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으니까"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깡패들의 거듭되는 협박과 회유.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그녀는 침착하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 두 마디로 상대를 압기한다. "다른 데 가서 노세요. 여기서 지분대지 마시고." 움츠러드는 깡패들. 허옇게 탈색된 머리와 빳빳한 옷깃을 본 순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기업으로 키워낸 영화 '미옥' 속 언더보스 나현정. 위풍은 배우 김혜수(47)의 얼굴을 통해 단번에 나타난다. 뜨거운 욕망이 격돌하는 음지에서 서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속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던 임상훈(이선균)이 최대식 검사(이희준)와 함께 새로운 일을 꾸민다. 계속된 공세로 궁지에 몰린 나현정은 복수를 준비한다. 그런데 단조로운 대응의 반복이다. 주체적 결단 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회심의 한 방도 없다. 배우의 연기에 전적으로 기대어 겉으로 드러나는 기세만 강하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혜수를 만났다. 그녀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했다. "수동적인 모습도 잘만 그리면 충분한 매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나현정의 이야기는 밀도가 높지 않다. 내면을 비추는 샷도 적고. 연기에서 실수도 있었다.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다."
-배역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주위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여자니까. 나현정의 인생이 기구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공감할 여지는 적다.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 쉬울 수 없다. 특히 모성애가 그랬다. 감옥에서 낳은 아들과 거의 교류하지 못했던 여자다. 일반적인 모성애가 나올 수 없다고 봤다. 여러 감정과 엮일 여지를 철저하게 견제했다."

영화 '미옥' 스틸 컷

영화 '미옥'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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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탈색하고, 흰색 정장부터 붉은색 가죽재킷까지 다양한 옷을 입었다. 강렬하지만 다소 과한 느낌도 있다.
"제작진과 상의해 결정했다. 강해 보일 필요는 있었다. 나현정은 감정을 감추는 여자다.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장, 의상 등으로 대신 전해지길 바랐다. 화려한 외형이 숨은 실력자라는 콘셉트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뷰티살롱을 운영하는 여자니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하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의상에 담고 싶기도 했고."

-근래 강렬한 이미지의 배역을 자주 연기하는 듯하다.
"'차이나타운(2014년)'에서 소규모 깡패 조직을 운영하는 엄마를 표현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체중의 변화가 거의 없는데, 살을 많이 찌워야 했다. 분장 팀의 노력이 없었다면 연기하지 못했을 거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얼굴이 말갛게 나오면 황폐해진 느낌을 낼 수 없으니까. 나이도 많아 보여야 했다."
-'깜보(1986년)'로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자전거 타는 장면을 대역에게 맡길 정도로 겁이 많다. 다치고 싶지 않아서 액션이 들어간 시나리오를 외면해왔다. 위험한 촬영을 여러 번 목격해서 외상성 신경증이 생긴 듯하다. 어렸을 때 MBC '베스트극장'에서 자동차가 호수에 빠지는 신을 찍은 적이 있다. 스턴트맨이 대신 물속에 들어가 수중촬영을 하는데, 멀리서 지켜보는데도 애가 탔다. 그 뒤로 액션 신을 기피한 것 같다. '타짜(2006년)'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신을 여러 번 촬영할 때는 최동훈 감독(46)에게 '그만 찍으면 안 되냐'고 부탁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다치는 게 싫다. 무섭고. 그런데 나현정은 액션을 빼고 설명할 수 없는 배역이다. 다행히 무술 팀에서 액션 동작을 효율적으로 설계해줬다."

배우 김혜수[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_강영호작가 제공]

배우 김혜수[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_강영호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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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무서울 때도 있나.
"항상 그렇다. 주위의 평가에 관계없이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나는 배우를 하기에 적합한 사람인가'라고 되묻는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자극을 받으면 자주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누구의 연기를 보고 마음에 반응이 일어났나.
"올해 초 EBS를 통해 '밀양(2007년)'을 시청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거의 안 켜는데, 손님들이 보셔서 함께 봤다.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었더라. 송강호(50)와 전도연(44)의 훌륭한 연기를 감상하는데 불현듯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저때 무얼 하고 있었나.' 나름 열심히 살았을 게다. 인간으로도, 배우로도. 좋은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연기가 인상 깊던가.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던 전도연이 놀라운 모성애를 보여준다. 세세한 연기로 설득력을 부여해서 연신 감탄했다. '잘 봤다'고 문자를 보내려다 참았다. 그때가 새벽 3시라서(웃음). 밖에 나와 밤하늘을 보며 '그래, 저런 사람들이 배우지'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연기로 만족한 적이 없다."

영화 '미옥' 스틸 컷

영화 '미옥'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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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은 겉보기에 여성영화 같지만, 임상훈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원제가 '소중한 여인'이다. 임상훈에게 나현정이 그런 여자인 거다. 고로 내가 주도하는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여성영화는 더욱 아니고. 여성을 조명하는 영화가 충무로에 많지 않다.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이야기의 밀도가 충분하다면 대중은 기억하게 마련이다."

-전반적으로 미옥에 대한 평이 좋지 않은데.
"시나리오는 영화보다 훌륭했다.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충격적이었다. 남자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나현정의 매력도 상당했고. 그래서 어렵지 않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액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 변화를 몇 번 줘봤는데, 대개 외적 변화에 그쳤다. 내게 없는 면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연기를 피한다. 아마 타짜가 이런 관념을 뛰어넘은 유일할 영화일 거다. 배우는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다른 배우들에게 민폐지만,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내 면면을 충분히 활용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아직 보여줄 것들이 많으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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