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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장기말 중 '차(車)'는 왜 대각선으로 못 움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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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전차(戰車)를 본떠 만든 '차(車)'

실제 당시 전차는 좌·우회전 불가, 오로지 전진
전차의 허점을 이용해 대승한 알렉산더 대왕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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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바둑과 함께 옛날부터 내려오는 놀이인 '장기(將棋)'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단연 '차(車)'다. 실제 점수제 장기게임에서는 차를 하나 잡으면 13점을 얻어 2점을 주는 졸(卒)이나 5점을 주는 마(馬), 7점을 주는 포(包)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만큼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말로 손꼽힌다.

그런데 차는 한번에 가로 세로 직선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대각선으로는 움직이지 못한다. 서양 체스에서 '룩(Rook)'도 같은 법칙을 따른다. 이 차라는 장기말은 벤허(Ben-Hur)와 같은 고대 사극에서 주로 나오는, 말로 끄는 전차(Chariot) 부대의 움직임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직진으로만 주행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인간이 처음으로 만든 전투병기 중 하나였던 전차부대는 이동 중 방향선회가 거의 불가능해 직진만 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역사가 뒤바뀌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전차를 그린 그림(사진=픽사베이)

고대 이집트의 전차를 그린 그림(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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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저 말 위에 안장하나 올려놓은 기병대에 비해 전차부대가 늦게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차부대가 기병대보다 훨씬 먼저 탄생했다. 전차부대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6000여년 전인 고대 이집트와 중동 인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람이 말등에 올라타는 기병은 이보다 수천년 뒤에 탄생했다.

이유는 고대엔 말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말은 보통 몸길이가 2m 이상, 무게가 350~700kg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동물이지만 이는 수천년간 이어진 끝없는 품종개량으로 말의 체격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대시대 말은 기껏해야 세인트버나드 등 대형견종보다 약간 큰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말 위에 올라타서는 도저히 속도전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이것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전차였다. 고대 이집트나 중동에서 쓰던 전차부대는 보통 전차 1대당 말 4마리가 끌고 3명이 탑승하는 방식으로 조가 짜였다. 마부 한사람이 조종하고 한명은 창이나 활로 공격했으며 한명은 방패로 적의 화살을 막는 방식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방식의 4두전차가 유행했으며 말 옆에 숫자 4가 붙은 '사(駟)'라는 단어는 이 4두 전차를 의미하기도 했다.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병마용 중 전차병 모습. 고대 중국의 4두 전차의 모습을 보여준다.(사진=위키피디아)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병마용 중 전차병 모습. 고대 중국의 4두 전차의 모습을 보여준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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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는 기존 보병에 비해 빠른 기동성을 가지고 있고, 위급할 때는 전차를 엄폐물로 삼아 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기병이 유행하기 전, 고대전의 필수 무기 중 하나로 정착됐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의 람세스2세가 히타이트 왕국과 겨뤘다는 카데시 전투에서는 수천대의 전차가 동원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고대 주(周)나라 때부터 군사력의 기준이 됐으며 만대의 수레를 지닌 만승(萬乘) 군주는 황제, 제후국은 천승(千乘) 군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애용되던 전차였지만, 피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으니 한번 돌진하기 시작하면 선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당시 전차는 오늘날 자동차처럼 핸들이 있어서 좌회전, 우회전이 가능한게 아니라 글자그대로 수레에 바퀴를 단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잘못 선회하면 전차가 아예 뒤집어지기 일수였다.

더구나 안그래도 좁은 곳에 모아놓으면 툭하면 싸우는 말들을 연이어 붙여놓고 조종하다보니 까딱 실수하면 말들이 서로 전차를 이탈해 달아나거나 스텝이 엉켜서 모두 넘어지는 불상사도 잦았다. 더구나 전차는 노면이 울퉁불퉁하면 바퀴가 망가지거나 뒤집어지기 쉬웠기 때문에 전투 전, 공병들이 가서 열심히 삽질을 해서 노면의 요철을 뒤덮고 땅을 잘 다져놔야했다.

고대 로마도시인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 다리우스3세의 전투도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고대 로마도시인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 다리우스3세의 전투도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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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차의 단점을 이용해 승기를 잡은 인물이 서기 4세기, 마케도니아의 탁월한 전략가였던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그는 페르시아 대군과 맞선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최강 병기인 전차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짰다. 당시 페르시아군은 선봉에 전차부대가 섰고, 전차부대가 적진을 어느정도 분쇄시키고 빠지면, 뒤이어 후위에 선 본대가 적을 공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에 알렉산더 대왕은 주력군인 보병대를 이끌고 진군하다가 전차대가 근접하자, 병력을 좌우로 분산시켜 페르시아 전차부대가 그대로 통과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선회할 능력이 없는 페르시아 전차부대는 그대로 돌진해 전선을 이탈했고, 이 틈을 타서 다시 집결한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당황한 페르시아 군의 중앙부를 파고들어 다리우스3세의 본진을 공격했다. 놀란 다리우스3세가 그대로 도주하면서 페르시아는 몇배나 되는 대군을 가지고도 참패했다.

이렇게 세계사를 바꾸기도 했던 전차부대는 기병대가 보편화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유럽 왕실에서 모는 마차나 고대 사극에서 나오는 로마의 마차경기를 통해서나 과거 영광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전차의 영광이 남은 흔적은 19세기 지어진 철도에서 볼 수 있는데, 철도 폭의 기준이 고대 로마시대 쌍두전차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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