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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톨스토이와 강남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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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내 생각에 의하면 토지란 매매할 수 없는 것이오. 그 이유는 만일 토지를 팔 수 있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이를 모조리 사버릴 것이고, 만일 토지가 없는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게 될 경우에는 그 권리로 자기가 받고 싶은 만큼의 액수를 얼마든지 받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논의를 하면서 한 말이다. “토지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오. 하느님의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톨스토이가 토지에 대해 가졌던 기본적 생각으로 이해된다.
톨스토이는 이 대목에서 허구의 세계에서 살짝 빠져나와 현실의 사상가 헨리 조지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단일세’를 제시한다. 소설이 발표된 1899년 당시에 헨리 조지는 마르크스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고, 저서 ‘진보와 빈곤’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판매됐다고 한다.

토지소유자에게 매년 지대(地代) 세금을 징수하자는 게 골자다. 토지를 정부로부터 빌려 쓰고 그 임대가치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이 세금은 사회복지 등 공공의 목적을 위해 쓰인다.

토지는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어진 자원인데도 특정 소수가 소유권을 행사해 이익을 취함으로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게 바닥에 깔린 인식이다.
한국 사회는 헨리 조지의 생각과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해 온 듯 하다. ‘강남’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고, 그 상징의 실체는 부동산이다. 정부가 규제에 나서면 오히려 강남 집값은 오른다는, 희한한 ‘불패’의 믿음도 생겨났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봉천동, 사당동 등 산꼭대기 달동네에는 움막 같은 집 하나에 서너 가구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반면, 삼청동, 성북동, 방배동 등에서는 수십억원짜리 집에 초호화판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라 하더라도 이 격차는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수석을 지낸 문희갑씨의 말이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는 신도시 조성과 함께 택지소유상한법 등 토지공개념 법들을 제정했다. 어찌 보면 헨리 조지의 사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려 했던 셈이다.

다시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해 이익을 거두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은 자꾸만 멀어져가는 현실과의 일전을 벌이려 한다.

그러나 칼은 더없이 정교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국민순자산은 1경3000조원가량인데 이 중 86%가 토지와 주택 등 부동산이다. 단기간의 강한 충격은 국민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피를 내지 않고, 아니 최대한 덜 내면서 환부를 도려내는 절정 고수의 검법을 시전해 보일 수 있을까. 보유세 인상 여부는 승부처가 될 것 같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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