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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읽다]"잠기는 섬, 투발루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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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림자

▲투발루 아이들이 석양을 배경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들 세대들에게 고향땅을 물려주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투발루 아이들이 석양을 배경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들 세대들에게 고향땅을 물려주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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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푸티(투발루)=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올해 우리나라에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점점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구 전체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나라 전체가 수몰 위기에 빠진 국가도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극복해야 할 '국제 공조 사업'으로 떠올랐다. 아시아경제는 2015년 [북극을 읽다], 2016년 [남극을 읽다]에 이어 올해 기후변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남태평양 도서 국가를 8월1일부터 10일까지 방문한다. [기후변화를 읽다]를 연재한다. 피지, 투발루, 통가를 현장 취재하면서 기후변화의 현재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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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아이 뒤편으로 커다란 물탱크가 보인다. 투발루에는 식수난이 심각하다.

▲해맑은 아이 뒤편으로 커다란 물탱크가 보인다. 투발루에는 식수난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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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할 줄 알아요."

지난 3일 오후 1시.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발루(Tuvalu) 수도 푸나푸티(Funafuti)에서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낯선 땅의 낯선 아이였습니다. "영어할 줄 알아요?"라고 질문했더니 "슈어(당근!)"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럼요. 당근이죠"라며 해맑게 웃었습니다. 낯선 이에게도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순수함이었습니다. 그 아이 뒤편으로 커다란 물탱크가 보였습니다. 그 탱크에는 '호주 정부 원조 프로그램'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투발루는 평균 해발고도가 2.2m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곳이 5m이다.

▲투발루는 평균 해발고도가 2.2m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곳이 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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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 동안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를 찾았습니다.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전체가 바닷물에 잠길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입니다. 피터(Peter) 남태평양대학(USP) 박사는 "기후변화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30~60년 안에 투발루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투발루에는 식수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하로 염수가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2011년에는 기후변화 탓으로 극심한 가뭄이 투발루에 찾아왔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동됐습니다. 투발루가 남태평양 도서 국가 중에서도 기후변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말로만 듣던 기후변화가 실제 이 나라를 위협하고 있고 생존의 문제까지 닿아있는 현실이 펼쳐졌습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이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과연 투발루는 어떤 나라가 돼 있을까요. 자신의 아이가 투발루를 떠나지 않고 낯선 이의 질문에 지금처럼 웃으며 말하는 그런 나라일까요.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가 계속되고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이 아이는 자신의 고향땅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푸나푸티 남쪽 끝이다. 양쪽에 있는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육지를 위협할 것 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투발루 국민들이 살고 있다.

▲푸나푸티 남쪽 끝이다. 양쪽에 있는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육지를 위협할 것 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투발루 국민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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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는 산호초 섬=투발루는 산호초 섬입니다. 오랫동안 산호초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섬입니다. 이 때문에 해수면과 바로 맞닿아 있습니다. 투발루 수도인 푸나푸티의 평균 해발고도는 2.2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바다와 거의 비슷한 고도입니다.

투발루 정부는 해수면이 매년 약 0.5㎝씩 상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30~60년 뒤에는 투발루 국토의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길 것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오전 9시. 피지 수바의 나우소리(Nausori) 국제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약 2시간 20분을 비행한 뒤 투발루 푸나푸티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하는 동안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아름다운 섬들이 펼쳐졌습니다. 푸른 빛깔을 머금은 섬들이 하나, 둘씩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저 풍경도 해수면이 상승하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투발루 푸나푸티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바라본 투발루는 초승달 모양이었습니다. 북쪽의 좁은 폭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내려오면서 서서히 넓어졌고 남쪽에서 다시 좁아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비행기가 푸나푸티 공항 활주로에 착륙할 때 양쪽으로 사람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는 활주로가 있는 곳이 가장 넓은 곳입니다. 중앙무대쯤 됩니다. 비행기 활주로는 투발루 국민들에게 그냥 활주로가 아닙니다. 도착한 3일 저녁 5시30분쯤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굉장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투발루 아이들이 저녁시간에 활주로를 걷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도 투발루는 그곳에 존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대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투발루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발루 아이들이 저녁시간에 활주로를 걷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도 투발루는 그곳에 존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대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투발루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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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에 비행기가 아닌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있는 정기 여객기를 제외하면 이곳은 푸나푸티 시민들의 놀이공간입니다. 푸나푸티에 약 6000명이 살고 있는데 전체 시민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은 활주로에서 럭비, 축구, 배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활주로는 다른 곳으로 진출하는 공간이자 이들 푸나푸티 시민들에게는 함께 즐기고 운동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끝에서 끝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아=한국에 두 달 동안 머물었고 사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에니(Elifalneti Ene) 투발루 기상청 관계자를 공항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났습니다. 출장을 떠나기에 앞서 한국에서 에니에게 미리 수차례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했습니다.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3일 수바에서 투발루로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대책도 없이 무작정 투발루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서 입국절차와 세관을 거쳐 빠져나왔습니다. 푸나푸티공항 바로 뒤편에 투발루 정부청사가 있습니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라며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5분을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뒤쪽에서 오토바이를 탄 한 남자가 "미스터 정?"이라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고개를 돌려봤더니 에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맑게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에니! 수없이 연락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어요."
"여기 통신망이 아예 다운돼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겁니다."

▲에니와 함께 찾은 푸나푸티 북쪽 끝. 바다와 바다 사이가 20~3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남태평양에서 흘러들어오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에니와 함께 찾은 푸나푸티 북쪽 끝. 바다와 바다 사이가 20~3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남태평양에서 흘러들어오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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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피지에서 만났던 김성인 대사가 말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에니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더니 김 대사는 "우선 대사관에서도 투발루정부에 연락을 해볼 텐데 아니면 그냥 가셔도 될 것"이라며 "좁은 나라여서 정부청사 앞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라고 웃었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 그 말은 현실이 됐습니다.

투발루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에니는 저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라고 하더니 투발루는 보여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취재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푸나푸티 공항은 북쪽과 남쪽 끝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에니는 우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북쪽으로 가는 중간 중간 투발루 국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보였습니다. 양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대부분 푸나푸티 시민들은 웃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집들은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허름한 모양새였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얽기 설기 엮어 조금은 불안해 보였습니다.

에니가 투발루의 메인 도로를 따라 오토바이를 모는 사이 맞은편에서도 오토바이가 수없이 지나갔습니다. 투발루는 '오토바이의 나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정도로 많았습니다. 오토바이가 많은 이유는 조금 뒤에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습니다. 10분쯤을 약 20㎞의 속도로 천천히 갔는데 벌써 푸나푸티 북쪽 끝에 다다랐습니다.

▲시멘트 방어벽으로 해수면 상승을 막고 있는데 역부족으로 보였다.

▲시멘트 방어벽으로 해수면 상승을 막고 있는데 역부족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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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푸티 끝에서 끝까지 오토바이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동차가 굳이 필요 없습니다. 물론 자동차가 없는 것은 아닌데 투발루 푸나푸티에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에니는 북쪽으로 달려가는 순간에도 맞은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이들과 손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습니다. 좁은 곳이다 보니 대부분 서로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쉴새 없이 에니는 "저분은 우리 삼촌" "저 사람은 내 사촌"이라며 설명했습니다.

"벌써 다 왔어요?"라고 에니에게 물었더니 "그렇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푸나푸티 공항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땅은 좁아졌습니다. 북쪽 끝에서는 바다와 바다사이가 약 20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파도가 높이 치거나 혹은 사이클론 등의 폭풍이 올 때면 바닷물이 넘쳐 육지를 위협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곳곳에 바닷물 방어벽 보여=다시 에니의 오토바이를 타고 푸나푸티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곳곳에 해수면 상승을 막기 위한 방어벽 설치 현장이 보였습니다.

푸나푸티공항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자 시멘트 기둥을 만들어 해안에 방어벽을 쌓아놓았습니다. 겹겹이 쌓아놓은 방어벽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차올랐습니다.

▲푸나푸티 국제공항은 아직 전산작업에 돼 있지 않아 비행기 티켓을 직접 손으로 작성해 준다.

▲푸나푸티 국제공항은 아직 전산작업에 돼 있지 않아 비행기 티켓을 직접 손으로 작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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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시멘트 벽돌을 이용해 바닷물이 넘쳐오는 것을 막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에니는 "푸나푸티 여기저기 이런 방어벽이 있는데 얼마나 버텨낼지 아니면 전체 국토를 이렇게 방어벽을 쳐야 하는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자본이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불안합니다"=투발루에서 만난 싱아(Seiga T, 28)씨는 "우리는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싱아 씨는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당장 먹는 물 문제가 심각하다"며 "빗물을 정수해 사용하고 있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비가 오면 빗물을 탱크에 보관했다 정수한 뒤 끓여서 먹습니다.

▲푸나푸티에 있는 집들은 슬레이트 등을 얹어 만든 1960년대 우리나라 모습을 연상케 했다.

▲푸나푸티에 있는 집들은 슬레이트 등을 얹어 만든 1960년대 우리나라 모습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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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투발루가 물에 잠기면 갈 수 있는 곳은 호주와 뉴질랜드 정도"라며 "그 전에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우리가 고향땅을 버리지 않고 이곳에 계속 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투발루 국민이 주식으로 먹는 코코넛의 경우도 바닷물이 침투하면서 해안가 곳곳에서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풀라카(Pulaka)는 투발루 국민에게 중요한 탄수화물 공급원입니다. 풀라카는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재배되는 타로와 비슷한 뿌리식물입니다. 투발루 주민들의 전통적 탄수화물 공급원입니다. 이 또한 재배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투발루 사람들은 수공예, 수산업, 갈랜드(Garland, 꽃목걸이) 등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합니다. 가끔씩 중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레스토랑 등 사업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라고 싱아 씨는 설명했습니다.

▲푸나푸티공항 활주로는 투발루 국민들에게는 스포츠를 즐기는 중앙광장 역할을 한다. 4일 저녁 푸타푸티 시민들이 활주로에서 축구 등을 즐기고 있다.

▲푸나푸티공항 활주로는 투발루 국민들에게는 스포츠를 즐기는 중앙광장 역할을 한다. 4일 저녁 푸타푸티 시민들이 활주로에서 축구 등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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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잠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뒤척이다 잠에서 깬 4일의 이른 아침. 푸나푸티 전체에서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기계음 소리와 함께 음악소리까지 겹쳐지면서 뭔가 푸나푸티 전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호텔에서 길거리로 나섰더니 전체 거리 곳곳에서 길게 자란 풀을 예초기로 자르고 있었습니다. 방치돼 있던 쓰레기도 깔끔하게 치워졌습니다. 에니는 "오늘은 푸나푸티의 '대청소의 날'"이라며 "푸나푸티 전체 시민이 나와 길거리를 정돈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투발루는 오토바이 천국이다. 끝에서 끝까지 15~20분이면 갈 정도로 작기 때문에 오토바이로 이동이 가능하다.

▲투발루는 오토바이 천국이다. 끝에서 끝까지 15~20분이면 갈 정도로 작기 때문에 오토바이로 이동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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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금요일은 푸나푸티 '대청소의 날'이었다. 시민들이 긴 풀을 예초기 등을 이용해 자르고 있다.

▲4일 금요일은 푸나푸티 '대청소의 날'이었다. 시민들이 긴 풀을 예초기 등을 이용해 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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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호초 섬, 투발루 지켜야=떠나기 하루 전날 저녁. 다시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4일 오후 5시30분쯤 찾은 바다는 잔잔했습니다. 고요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투발루 정부청사를 지나 몇 분 안 되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모래를 벗 삼아 뛰어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제 3~4살쯤 돼 보이는 아이 세 명이 열대나무 잎을 잡고 그네를 타고 모래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뒤쪽으로 석양빛이 내리비쳤습니다. 아이를 품고 있는 석양은 남태평양 투발루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투발루의 현재를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해맑게 놀이에만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 어느 순간보다 소중했습니다. 지는 석양을 뒤도 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투발루 국민들의 주요 탄수화물 공급원인 '푸쿨라'도 염수 침투 등으로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발루 국민들의 주요 탄수화물 공급원인 '푸쿨라'도 염수 침투 등으로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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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인 5일 푸나푸티에서 피지 수바로 되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페페투아 라타시(Pepetua Latasi)의 옆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미 예정돼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녀는 투발루 정부의 기후변화와 재난부서(Climate Change & Disaster)에서 근무합니다. 푸나푸티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비행기를 타고 회의에 참석하는 등 무척 바쁘기 때문입니다. 수바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연히 그녀도 출장이 계획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타시는 "투발루 문제는 국제 공조가 가장 중요하다"며 "투발루의 현재를 설명하고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곳곳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실정을 가능한 자세히 설명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아마도 투발루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것입니다.

그녀는 현재 투발루에 가장 필요한 것을 두고는 "재정과 기술적 지원"이라며 "파리기후협정에서 합의한 것처럼 이제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난한 나라들에 직접적 지원을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후변화는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지구 온난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합니다. 산업화와 무차별적 개발 등으로 지구는 정화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등 온실가스가 원인이라면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의 책임이 큽니다.

▲푸나푸티에서는 콘트리트를 이용해 해수면 상승을 막고 있다.

▲푸나푸티에서는 콘트리트를 이용해 해수면 상승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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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산화탄소 배출 책임 비중이 0.001%에 불과한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이 입고 있습니다. 선진국다운 자세를 보인다면 이제 이들 나라에 대해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남태평양을 지키는 것은 이들 나라 혼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가 같이 고민해야 하는 핫이슈입니다.

투발루에서 만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석양을 배경으로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들. 투발루를 떠나기에 앞서 이들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투발루에서 자라야 합니다. 어른이 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 세계가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남태평양의 투발루 수도 푸나푸티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이를 보전하기 위한 전 세계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태평양의 투발루 수도 푸나푸티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이를 보전하기 위한 전 세계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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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투발루·키리바시 등 가난한 나라들, 기후변화에 몸살

▲키리바시 또한 산호초 섬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잠길 위기에 있는 나라이다.[사진제공=피지 대한민국 대사관 박상태 서기관]

▲키리바시 또한 산호초 섬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잠길 위기에 있는 나라이다.[사진제공=피지 대한민국 대사관 박상태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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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전체가 위협받고 있는 곳은 투발루뿐만 아니다. 투발루에서 적도 쪽으로 더 올라가면 키리바시가 있다. 키리바시도 산호초 섬으로 솟구치는 해수면으로 나라가 잠겨들고 있다. 키리바시는 북위 1도21분, 동경 172도56분에 자리잡고 있다. 적도에 맞닿아 있는 셈이다.

이곳을 얼마 전 방문했던 박상태 주피지 대한민국대사관 1등 서기관은 "나라 전체가 해수면과 거의 비슷한 고도이다 보니 이들에게 해수면 상승은 절체절명의 기후변화 재앙"이라고 설명했다. 키리바시는 1892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가 1979년 독립했다. 인구는 약 10만 명 남짓의 작은 섬나라이다. 키리바시는 32개의 산호섬과 1개의 외딴섬(Banaba)로 이뤄져 있다.

기후변화에도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은 '나 몰라라'식의 방관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작 이산화탄소 배출에 거의 책임이 없는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이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다.

투발루는 197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9개의 산호초 섬으로 구성돼 있다. 1인당 GDP는 2016년 기준 약 3500달러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경제활동 없이 매년 4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고 있다. 투발루 정부가 투발루 국가 도메인인 닷티브이(.tv)의 사용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투발루는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 중의 하나이다. 투발루의 주요 수입원은 외국 선박의 입어료, 도메인(.tv) 사용료, 공여국 원조 등이다.

투발루는 폴리네시아에 있는 섬나라이다. 남위 7도28분, 동경 178도40분에 위치하고 있다. 키리바시, 나우루, 사모아, 피지와 가깝다. 면적 순으로는 바티칸 시국과 모나코, 나우루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다. 인구 순으로는 바티칸 시국과 나우루 다음으로 주권국가 중에서 세 번째로 적다.

아직은 보건에 큰 문제는 없는데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존재한다. 투발루에 병원은 1개 밖에 없다. 푸나푸티에 PMH(Princess Margaret Hospital) 병원이 있다. 나머지 섬들에는 간호사가 보건을 책임지는 정도이다.

가난한 나라인 투발루가 기후변화란 재앙 앞에 혼자서는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판단된다. 전 세계의 지원과 국제적 공조만이 이들의 터전을 보전하는 유일한 길이다. 기후변화에 있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공조 시스템 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푸나푸티(투발루)=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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