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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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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로 불리는 소형 설치류다. 길고 부드러운 털이 몸을 덮고 있다. 짧은 꼬리를 포함해 몸길이는 7~15㎝에 불과하다. 다람쥐를 떠올리게 하는 작고 귀여운 외모를 지녔다. 레밍의 주 서식지는 북극에서 가까운 툰드라 지역이다.

레밍은 집단으로 이동하는 습성을 지녔다. 개체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 살길을 찾고자 이동을 시작한다. 선두에 선 레밍이 길을 잘못 잡아 바다나 호수로 뛰어들 경우 뒤따르던 레밍이 함께 빠져 죽기도 한다. 이는 레밍의 사회적인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집단 자살을 위해 물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무리와 함께하려는 특성 때문에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레밍 신드롬'은 자신의 주관 없이 다른 사람 선택을 따라가는 부정적인 뜻으로 인용되지만, 해석을 달리할 여지도 있다.

레밍을 둘러싼 사연은 한국의 현대사와도 맞닿아 있다. "한국인의 국민성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건 그 지도자를 따라갈 것이며,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 1980년 8월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원래 위컴이 사용한 단어는 레밍이었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들쥐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레밍이나 들쥐나 단어만 다를 뿐 본래 전달하려는 뜻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은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라가는 레밍과 다를 바 없다는 비하의 의미가 담겼다. 타국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오만한 태도다.
물에 잠긴 청주 일대 모습(사진=연합뉴스)

물에 잠긴 청주 일대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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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북의 한 도의원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인 '레밍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충북 주요 지역이 물난리를 겪는 와중에 도의원 4명이 외유성 출장을 떠났다. 한 도의원의 해명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을 '집단 행동하는 설치류'에 비유했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국민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안겨준다. 이런 공직자가 그 지방의원 한 명뿐일까. 특정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꼴이다.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이 흔히 빠지는 오류는 자신이 국민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다. 우매한 국민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민심도 우습게 여기게 마련이다.

이런 공직자가 레밍에 빗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레밍은 무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길을 떠난다. 적어도 사회와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레밍이 인간보다 우월한지도 모른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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