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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탄식' 조선일보 사설이 불편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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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읽는기자]"한반도 문제 우리에게 해결할 힘 없다" 발언을, 이 신문이 읽는 법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국무회의에서 문득 털어놓은 G20정상회의의 핵심 '소회'같은 말 한 마디가 그렇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할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이를 해결할 힘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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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문대통령이 정상회의를 하면서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꼈던 문제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식을, 내각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심경을 담았을 것이다.

정상외교를 끝내고 막 돌아온 대통령이, 이런 토로를 하는 풍경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외교를 통한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무력감을 드러낸 국가지도자를 보면서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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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것은, G20 정상들에게 북핵문제를 정상선언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된 점에 대한 상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외교를 다변화하고 외교역량을 키워가야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한 대목은, 대통령의 외교적 안목과 인식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의 성과라면 성과다.

문대통령의 '외교소회'를 정색하고 다룬 신문은, 조선일보다. 다른 신문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거나 다른 기사에 얹어 다뤘지만, 이 신문은 1면에 사이드에 부각시키고 사설 톱으로 다뤘다. 사설은 대통령의 말에 관한 조선일보의 '생각'을 조근조근 드러낸다. 한번 들여다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일 독일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일 독일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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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 "북핵 해결할 힘 우리에게 없다"(조선일보 사설 제목)

제목은 문대통령의 말을 슬쩍 압축하면서 '북핵'이란 말을 바로 박아놓았다. 즉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할 힘을 말했는데, '한반도 문제'를 '북핵'이라고 적시한 것이다. 북핵문제를 정상선언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소회라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 = 북핵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북핵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과 더불어 그의 신베를린선언(남북정상회담 제안)과 같은 화전(和戰) 양면의 문제를 모두 그 말에 넣었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말을 더 들어보자. 대통령의 발언에 관해 "냉정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이라고 전제하면서 "웬만한 국민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슬쩍 안다리를 건다. 즉 국민은 다 알고 있는 상식을 대통령이 이제야 깨달은 듯 탄식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상식의 핵심은 3가지다. (1)북한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 (2)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포기 안 한다 (3)중-러와 미국 사이에 합의 가능성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대통령만 몰랐거나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시청 '베어홀(bear hall)'에서 가진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을 담은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베를린=황진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시청 '베어홀(bear hall)'에서 가진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을 담은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베를린=황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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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새삼스러운 것처럼 말하는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이라고 갈고리를 건 뒤 "안보 전략은 현실 위에 수립돼야 한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저 탄식어린 각성을 평가해준다.

이 신문은, 대통령이 선거 때 "우리가 문제의 당사자이고 문제 해결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방미 직후인 3일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겠다"는 등의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져오다가,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뒤부터 '레드라인' 발언을 하는 등 인식이 현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핵심 훈수를 둔다. "힘이 모자라는 나라는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살펴야 하고 무엇보다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는 일의 선후와 경중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것을 잃더라도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을 잃더라도 한-미동맹을 최우선 순위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설픈 줄타기 외교나 상대의 깊은 의중을 고려하지 않은 환상에 매달려선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만찬을 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만찬에서 논의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베를린=EPA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만찬을 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만찬에서 논의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베를린=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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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힘과 그 한계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갖고 '북한의 핵무장'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문대통령의 말을 일부만 가져와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대통령은 좀 더 외교를 다변화하고 역량을 키워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파워외교를 펼쳐야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지, 결코 한-미동맹에 집중하여 북한을 응징하는 쪽에 서야겠다는 말을 한 게 아닌데 말이다. 한-미 동맹이 부족해서, 정상선언에서 차질을 빚은 것도 아니었다.

트럼프의 미국이 북핵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자국의 이익과 입장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문대통령은 깨달았을 것이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남의 말을 그렇게 '준비된 자기 논리'로 나꿔채는 사설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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