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30일자 동아일보가 ‘올해의 인물’로 뽑은 의사 오연상씨의 말이다. 그해 초 일어난 대학생 박종철씨 사망 사건이 물고문 때문이었임을 세상에 알렸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숨진 상태였다. 수사관들은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려 했다. 사망 시점의 장소로 대공분실과 병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망 원인이 은폐될 수 있다. 오씨는 몰래 병원으로 전화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알렸다. 결국 중앙대병원 측의 제지로 시신은 경찰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이후 오씨에게는 수사관 3명이 감시조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화장실까지는 따라 오지 않았고, 그 곳에서 기막히게도 한 기자를 우연히 만났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있었다. 박군도 물에 빠진 사람 같았다” 고문이 횡행하던 야만의 시절, 쉽게 낼 수 있는 용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쥐어짜듯이 내뱉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용기는 세상을 바꿨다.
백 교수는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에서 “어떠한 형태의 외압도 없었고 소신대로 기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직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했는지에 대해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게 객관적 정황이다. 결과적으로 오씨는 정권의 악마성을 폭로했고, 백 교수는 경찰 폭력에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 됐다.
오씨는 10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박종철 사건으로 신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우연한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2년 쯤 후에 기독교 신자가 됐다고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안락 때문이거나, 혹은 두려움에 굴복해 양심을 버린다면 결국에는 오랜 고통을 피할 길이 없겠다. 죽음 이후를 믿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 발치 앞만 내다보다가는 추락하기 십상이다. 아주 짧게 본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는 소망을 접어야 하는 것이 매우 치명적이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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