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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나쁜 회의, 좋은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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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 개의 회의가 있다. 원자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a)와 자전거 보관소 설치 회의(b), 직원들이 먹는 커피 브랜드 회의(c). 각 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비용은 1000만달러(a), 2350달러(b), 4달러75센트(c)다. 상식대로라면 거금이 투입되는 a가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다. b와 c는 상대적으로 쉽게 끝날 문제다.

정말 그럴까. 영국의 사회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반기를 들었다. 지역 재정위원회 회의에서 '사소함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법칙에 따르면, 회의 안건을 논의하는 시간은 그 안건에 소요되는 비용에 반비례한다. 실제로 a는 2분30초만에 끝났지만 b는 45분, c는 1시간 이상 걸렸다.
파킨슨의 분석은 이렇다. 원자로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주제다. 어설픈 훈수는 망신당하기 쉽다. 사업이 실패했을 경우 책임도 크다. 그러니 의견 피력을 자제한다. 반면 자전거 보관소를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커피 브랜드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는 만만한 안건이다. 결과에 대한 부담도 적다. a에서 침묵한 것을 보충하고도 싶다. 그러니 이미 결론이 내려졌는데도 중언부언 훈수가 이어진다.

'좋은 회의'도 있다. 고(故)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다. 혁신의 상징인 미국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손꼽힌다. 브레인트러스트는 첫째, 누구에게도 회의 주도권이 없다. 참석자 모두가 발언자이고 결정권자다. 둘째, 솔직하게 말한다. 상대를 존중하되, 격렬하게 토론한다. 셋째, 결론 도출이다. 100%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해법을 제시한다. 종합하면, '좋은 회의'란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결론을 내려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쁜 회의'는? 혼자 말하는 회의, 결론 없는 회의, 결론을 실행하지 않는 회의.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미리 정해놓은 결론이 없고, 계급장이 없고, 받아쓰기가 없는 '3무(無)' 회의다. 계급장을 떼고 건설적인 논쟁을 하자는 취지다. 생각이 다르면 언제든 '노(No)' 하라는 주문이다. 청와대는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초의 계기가 바로 여기"라고 설명했다. 문 정부 개혁의 출발점이 청와대의 '열린 회의'임을 역설한 것이다. 취지도 좋고, 의지도 느껴진다.
다만 문 대통령이 노타이 차림을 하자 참모들 모두 노타이 일색인 회의 장면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획일적이고 엄숙해보인다. 참모들의 지나친 자기단속이랄까. 유시민 작가 말마따나 '튀는 참모' 몇명은 있어도 될 터. 까짓것 '열린 회의'라면 그 정도 파격쯤이야.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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