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를 받은 뒤 5일 만인 12월 16일 새벽 1시40분. 필자는 연이은 심야조사에 쓰러져 서울 강북구 한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체포됐다. 이어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됐다. 얇은 모포 한 장에 의지해 그해 겨울을 견뎠다.
상사의 지시를 받아 철저히 조사를 하고 충실하게 보고서를 썼는데 돌아온 것은 구속이었다. 이 문건으로 인해 고(故) 최경락 경위와 필자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혹독한 댓가를 치뤘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얼마전 저녁을 함께 한 친구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문고리3인방, 십상시, 권력서열 1·2·3위 등을 거론하며 필자에게 신조어 제조기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 단어들은 농담이 아니다. 십수년간 민정에 몸담았던 탓에 이들의 행태를 잘 알았던 필자의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함축적 표현이었다.
공직자가 업무상 작성한 문건을 언론사에 제공했다면 틀림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하지만 필자는 언론사는 물론 외부인에게 준 사실이 없음에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당시 수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했다. 최순실 게이트로까지 이어진 문건 내용에 담긴 국정농단 유무는 형사1부, 문서유출은 특수2부로 배당된 것만 봐도 그렇다. 문건유출 국기문란에 초점을 맞추었던 수사로 불똥이 반대로 튄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경찰공무원 1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민정의 회유가 있었다고 썼다. 그러나 그가 운명을 달리한 지 2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가 남긴 궁금증에 대해 국민들은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작년 말 회유받은 사람과 회유한 당사자까지 언론에 보도됐는데 어떤 회유가 있었고 누가 회유를 지시했는지 아직 대답이 없다. 그리고 문건내용에 대한 수사는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재조사가 착수됐다. 세계사의 이성이라 불리는 헤겔은 "역사는 자유로움에 기초하여 교훈을 끌어냄으로서 불행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고 반성적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때의 자유로움은 정의와 도덕적 가치에 기반해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려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재조사를 전 정권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 뒤에 숨어 국정을 휘젓는 비선에 눈감고, 진실을 감추려 애꿎은 사람들을 핍박하는 권력의 행태에 대한 규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박관천 전문위원 parkgc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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