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4월19일 세상 떠난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의 삶
"마리 퀴리, 피에르 퀴리 부부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 함께 재직 중에 노벨상을 받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측에서 최근 안 후보와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1+1 채용'을 비판하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한 말이다. 퀴리 부부가 함께 노벨상을 받은 것은 1903년이다. 같은 대학에 근무했다는 공통점만으로 100년이 지난 이 부부의 성과가 느닷없이 2017년 대한민국 대선전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안 후보 부부와 비교됐던 퀴리 부부의 연구와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은 111년 전인 1906년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가 불의의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부인 마리 퀴리와 함께 노벨상을 받고 3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었다. 남편을 잃고 마리 퀴리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당신 없는 삶은 잔인하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번민이자, 바닥없는 고뇌이며, 끝없는 비탄입니다."
1895년 결혼한 이들의 사랑은 마리 퀴리가 남긴 '내 사랑 피에르 퀴리'에 절절하게 표현돼 있다. 마리 퀴리가 남편을 회상하며 쓴 전기와 그들의 라듐발견 실험 일지를 묶은 이 책에서 피에르 퀴리는 자상한 남편인 동시에 자연과 과학의 꿈을 사랑하며 연구에 정진했던 성실하고 독창적인 과학자로 표현됐다. 마리 퀴리는 남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단호하게 몰두했고, 인격과 재능만을 도구로 삼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며 인류에 봉사한 사람이다. 그는 과학과 이성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진리 탐구에 삶을 바쳤다."
과학과 이성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피에르 퀴리의 신념은 1903년 이 부부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가 한 연설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과학자로서 인류에게 던지는 자성의 질문을 담아 이렇게 연설했다. "라듐은 범죄자들 손에 들어가면 위험한 물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