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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5000만원의 기적...'우리들'은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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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 '우리들' 연출한 윤가은 감독 인터뷰

윤가은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윤가은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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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다양성영화는 가뭄에 콩 나듯 흥행한다. 대기업 자본에 밀려 극장에 걸릴 기회가 적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해외 영화제에서 명성을 쌓아야 겨우 주목받는 실정. 윤가은 감독(34)의 '우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희망을 썼다. 언어폭력, 거짓말, 따돌림 등 초등학교 4학년 소녀들의 격렬한 관계를 섬세하게 담았다. 우리 사회를 잠식한 상실과 고립의 두려움을 동심으로 뛰어넘으며 관객의 유년기를 환기시켰다. 베를린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 서른두 곳에 초청됐고, 지난 6월16일 개봉해 관객 4만6636명을 모았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체부동 카페 자연의 길에서 윤 감독을 만났다. 그녀는 다음 작품을 만들 토대를 마련하고도 걱정이 많았다. "다양성영화의 환경이 크게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정유년 새해에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다음은 일문일답
-첫 단편영화 '사루비아의 맛(2009년)' 이후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이렇게 힘이 들 줄 몰랐다. 준비한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시선 등이 더 깊어질 수 있었다."

영화 '우리들' 스틸 컷

영화 '우리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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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한국영화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아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폐부를 꿰뚫는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나오는 작품을 좋아했다. 특히 성장소설을 즐겼는데 충무로에서는 이런 소재가 많이 그려지지 않는 듯하다.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서도 우리 사회의 면면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확인하고 '우리들'을 만들었다."

-이른바 '백화점 영화'로 과부하에 걸린 충무로에서 '우리들' 같은 소재를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익을 남기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서점에서만 해도 아이들이 살아있는 주체로 나오는 책들이 많이 팔린다. 그들이 순수함의 상징으로 자주 대변된다. 성인과 다른 점은 경험이 조금 부족한 것뿐이다. 마음이나 행동하는 원리는 거의 똑같다."
-그런 고민이 시나리오에 반영돼도 대중성이라는 잣대 때문에 수정되는 경우가 잦다. 일각에서는 작가주의 영화의 위기로까지 본다.
"어느 정도 개입은 필요하다. 관객이 좋아할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우리들'을 만들 때도 촬영 전까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다만 상업영화들이 으레 거치는 블라인드 시사는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많은 감독들이 채점 방식에 불만을 토로한다. 주로 몇몇 신을 삭제하거나 바꾼다고 해서 관객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윤가은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윤가은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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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제작비 1억5000만원)'은 손익분기인 5만 명에 근접했다.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하지만 흡족하지 않다. 함께 작품에 매달린 식구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하다. 고생한 만큼 급여를 받지 못했다. 독립영화를 찍는 이들이라면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작품을 연출할 토대를 마련했다.
"새로운 동력을 얻은 건 감사한 일이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공동작업이다. 내 생각만 해선 곤란하다. '우리들'에서 내 지분은 10%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스태프의 노력과 희생으로 빚은 작품인데 최근 혼자 상을 받고 있어서 많이 미안하다."

_'우리들'은 CJ E&M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산학협력이 이룬 결실이다. 아무래도 연출 수입이 크지 않았을 것 같다.
"독립영화라서 대수롭지 않다. 다만 3개월 계약을 맺은 점은 아쉽다. '우리들'을 3년 동안 준비했다. 이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텼는데 세 번 월급을 받고 끝난 것이 많이 안타깝다. 인건비를 타당하게 책정하는 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표준근로계약서 등을 마련했지만 스태프 처우는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우리들'을 만들면서 사람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든든한 스태프만 있어도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겠더라. 그들에게 응당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으면 작품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투자자 등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우리 같이 작은 영화에서 예산을 줄일 때 가장 먼저 검토하는 것이 스태프의 임금이다."

영화 '우리들' 스틸 컷

영화 '우리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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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들은 투자·배급을 넘어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시장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지적에는 '우리들'과 같은 산학협력 작품을 자주 거론한다. 위축된 다양성 영화 시장까지 살리고 있다는 항변이다.
"대기업의 지원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훌륭한 감독들은 많은데 영화를 만들 기회가 적은 상황에서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작 환경이 달라져도 '우리들' 같은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진입장벽을 많이 낮춰야 한다. 새로운 시도가 많아져야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제작에 단점도 있을 듯하다.
"아무래도 성격이 상업적이다 보니 내 생각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다. 나중에 상업영화를 찍을 때를 대비한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정부의 국정 핵심 기조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인데, 제작 지원 등의 혜택은 거의 늘지 않은 것 같다. 1조원 모태펀드만 해도 영화 투자 범위가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늘었는데, 모태펀드에 의존도가 높은 다양성영화들이 의려 설 자리를 잃었다. 입맛에 맞는 대기업 투자 영화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도, 독립영화를 비롯한 작은 영화들은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제작 기회도 많아져야겠지만, 스태프 처우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 수입도 없이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분들께서 '용기 있게 도전하라'고 하는데, 현실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다음 연출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소녀들이 주인공이지만 '우리들'과는 다른 색깔이다. 다방면으로 자료를 조사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다. 최근 받은 상금 덕에 당분간 생활비 걱정 없이 작품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다."

윤가은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윤가은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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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이 말하는 '우리들'의 엔딩

"'진짜 금 안 밟았어. 내가 봤어.' 이 거짓말로 서먹서먹해진 누군가를 편드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선(최수인)과 지아(설혜인)처럼 오해나 실수로 인해 인간관계가 틀어진다. 상처를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 힘든 상황에 직면하는데, 어느 순간 멈출 줄 알아야 삶이 진전할 수 있다. 살면서 비슷한 경험이 왕왕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받을 때 맞대응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자기 삶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운 감정을 뒤로 하고 손을 내미는 데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자양분이고 때로는 살아가는 힘이 된다. 사실 초안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선과 지아가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고 만다. 글을 수정하면서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담고 싶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했고.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용기를 못 낼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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