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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그 사람들]⑩류성룡, 징비록을 남기고 간 풍운의 '전시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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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초상(사진=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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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임진왜란 당시 조선인 중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전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백전백승이라는 이순신 장군과 전시재상(戰時宰相)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유일하다.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懲毖錄)이 그의 사후 중국, 일본에서 모두 출간돼 18세기 베스트셀러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함께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돼있으며 사료로도 많이 쓰인다. 일본에서는 전시재상의 표본으로 알려져있으며 전반적으로 전무후무한 국가 위기를 맞아 슬기로운 대처로 난국을 극복한 명재상으로 평가받는다.
전쟁 전 류성룡은 전시재상보다는 천재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의 아들로 경상북도 의성 태생이다. 어린시절에 서울로 올라와 지낸 적이 있으며 이때 이순신 장군과는 동네친구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고 알려져있다. 지금도 충무로에 가면 '서애길'이라는 길이 있고 그곳에 류성룡의 집터라는 표석이 있다.

류성룡 집터(사진=중구청)

류성룡 집터(사진=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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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안동으로 옮겨 살면서 20대에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로 들어갔다. 책을 읽을 때 한 번 눈을 스치면 환히 알아 한 글자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을 정도로 머리가 좋아 이황의 수제자로 명망이 높았다. 이황도 "이 사람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며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1566년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여러 내직을 거쳤으며 이후 선조가 즉위하자 중용돼 총애를 받으며 꽤나 순탄한 관직 코스를 밟아간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가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선조의 즉위와 함께 갓 집권한 사림파가 다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지는 시기였고, 류성룡도 여기에 휩쓸리게 되었는데 그는 상대적으로 이황과 조식의 제자가 많았던 동인에 속했다.
이후 정여립의 난과 관련한 기축옥사(己丑獄事)와 그와 관련한 당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도 원만한 처신과 선조의 비호 속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관직생활을 이어갔다. 임진왜란 직전에는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의 영수 정철이 실각하자 이후 서인에 대한 처우를 두고 동인이 이산해, 정인홍이 이끄는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갈라지면서 류성룡이 남인의 영수가 됐다.

한 당파의 영수로 불리긴 했으나 실제로 파벌싸움을 극심히 했던 인물로 분류되진 않는다. 실리적이고 온건한 일처리로 유명했으며 또한 업무 능력이 매우 훌륭했던 인물로 알려져있다. "류성룡은 속이려고 해도 도저히 속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석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야사에 따르면 상주목사 시절, 한양에서 손님이 찾아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때마침 고을에 복잡한 송사가 일어났고 조정에 보낼 공문을 급히 작성해야 할 일이 겹쳤다. 그러나 류성룡은 전혀 당황한 기색없이 송사의 판결문과 조정에 보낼 공문을 구두로 작성하면서 손님과의 바둑도 계속둬서 바둑을 이겼다. 또한 송사 판결문과 조정에 보낼 공문에는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고 한다. 일상업무를 제외하고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로 알려졌었는데 천문과 점술에도 능했고 의술에도 뛰어나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과 의술에 대해 논하고 조언을 해줄 정도로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특히 바둑은 중국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고수였다고 한다. 조선에 원군 대장으로 파병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선조가 바둑을 둘 때 선조를 위해 양산을 받치고 거기에 구멍을 내어 구멍 틈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선조에게 훈수를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 대국에서 류성룡은 선조와 이여송 장군의 체면을 둘다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비기게 훈수를 뒀다고 전해진다.

징비록(사진=두산백과)

징비록(사진=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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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과의 우정 또한 매우 각별했다 전해지는데 두 사람이 서신 교환을 자주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꿈에서 류성룡이 자주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난중일기에서 하루는 충무공에게 류성룡이 사망했다는 오보가 전해진 일이 있었는데 이때 충무공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점까지 쳐보며 류성룡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나온다.

또한 이순신 장군에게 여러 병법서를 보내주고 작전 등에 대해 서로 토론을 나눴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중국의 여러 병법서들을 류성룡이 정리해서 보내준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으로 보아 군사적 지식에도 꽤 전문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징비록에서도 임진왜란 도중 각 전투와 장수들의 전략에 대한 평가, 군제 운영이나 향후 국방 방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한 군사지식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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