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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분노한 민심이 무너뜨린 철벽요새, 역경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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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 드라마 '삼국'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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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온 인물들 중 실제 역사 속 모습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인물은 공손찬(公孫瓚)이다. 그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 화북지방 최대 군벌로 연의에서는 소설 초반 주인공인 유비(劉備)를 도와주는 선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에서는 폭정을 일삼다가 민심을 잃고 사망한 군웅으로 기록돼있다.

공손찬은 오늘날의 베이징(北京) 근처 지역인 유주(幽州)를 기반으로 황하(黃河) 이북 지역에 막강한 세력을 갖췄던 군벌이었다. 자신이 직접 이끌던 백마의종(白馬義從)이란 기병대를 중심으로 화북의 군벌들은 물론 만리장성 너머 이민족들을 토벌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 일시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지나친 폭정으로 민심을 크게 잃었다.
백마장군이라 불렸던 공손찬(사진=KOEI 삼국지13 일러스트)

백마장군이라 불렸던 공손찬(사진=KOEI 삼국지13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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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과 같은 시기에 생존했던 학자 왕찬(王粲)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유능한 학자들과 관료들을 모두 쫓아내고 점쟁이, 비단장수, 말장수 등을 자신의 최측근에 임명하고 의형제를 맺었으며 이들 비선실세들을 통해 부정축재에 열을 올렸다. 성격도 포악해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 그가 얼마나 백성들을 수탈했는지 화북지역에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었다고 할 정도다.

공손찬이 군사력을 믿고 악행을 멈추지 않자 화북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황족이었던 유주자사 유우(劉虞)는 10만의 군사를 일으켜 공손찬을 공격했다. 이때 유우는 "공손찬 이외의 다른 피는 흘려서는 안 된다"며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좋은 기회를 놓쳤고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에 나선 공손찬에게 대패했다.

공손찬은 전후에도 반성하지 않고 부하들과 백성들의 반대에도 유우를 살해하고 멋대로 자사가 되어 더욱더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다. 대규모 토목공사도 일으켜 자신이 거주할 철벽요새인 역경성(易京城)을 만들고 곡식 300만석을 강제로 징수해 성안에 두고 자신은 역경에 틀어박혀 향락에 빠졌다.
그가 역경성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공손찬의 라이벌 세력이었던 군벌 원소(袁紹)와 분개한 유주의 백성들, 이민족들이 모두 연합해 공손찬의 지배지역을 공격했다. 결국 공손찬은 역경성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상실하고 사방이 포위됐다. 하지만 공손찬은 역경성의 방어가 매우 탄탄하고 방어병력도 충분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병법에 백겹의 성루는 공격할 수 없다 했는데 나의 성루는 천겹이고 300만석의 양식을 다 먹고 난 후에는 천하 형세가 어찌될지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큰소리쳤다.

중국의 방어형 가옥 '토루(土樓)' 모습(사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

중국의 방어형 가옥 '토루(土樓)' 모습(사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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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역경성은 10중의 참호가 있고 참호 뒤에 각기 5~6장 정도(12~14m) 높이의 벽이 있었고 그 위에 망루만 수천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공손찬 자신은 중앙에 위치한 망루인 역경루에서 생활했으며 이 망루는 벽의 높이가 10장(23m)이 넘었고, 그 위에 고층 누각을 세웠다고 한다. 워낙 방어력이 단단해 원소군이 8년간 공략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공손찬은 역경루에 틀어박힌 후에 그곳에 철제문을 세우고 7세 이상의 남자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았다. 오직 그의 첩들만이 공손찬의 시중들었으며 모든 공문서는 누각에서 줄을 내려서 받았다. 또한 첩들에게 목소리를 크게 내는 훈련을 시켜 수백보 밖에서도 들릴 수 있게 하여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그의 수행비서들조차 공손찬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됐고 여기에 실망한 부하들이 모두 원소편으로 돌아서면서 그는 더욱더 고립됐다. 결국 대부분의 부하들이 떠나간 후 방어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성벽 밑으로 굴을 파는데 성공한 원소군은 성벽 전체를 무너뜨리고 역경성을 함락시켰다. 공손찬은 역경성이 함락되자 역경루에 불을 지르고 처자식들을 자기 손으로 죽인 후 스스로 자결하여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일대기는 제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와 강력한 병사로 지켜도 민심을 잃은 자의 권좌는 지킬 수 없다는 교훈으로 남아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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