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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가는 서울의 골목길 렌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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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의 뚜벅이작가’ 정진호 스페이스22 대표, '서울 걷기' 전시회 열어

재개발에 사라지는 변두리 동네 등…서울 구석구석 누비며 5년간 사진 촬영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 전시실에서 정진호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 전시실에서 정진호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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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 재개발을 눈앞에 둔 한남동의 비탈진 골목, 위태롭게 터 잡은 상도동의 낡은 집들, 후미진 변두리 동네 길가에 앉아 있는 초로의 사내…. 유난히 고요하고 쓸쓸한 정취가 묻어나는 이 풍경들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이자 사진갤러리 '스페이스22'를 운영하는 정진호 대표의 눈에 담긴 서울의 단면들이다. 정 대표는 지난 5년간 촬영한 서울 사진 중 26점을 선별해 '서울 걷기'라는 테마로 첫 무료 전시회를 열었다.
17일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만난 정 대표(60)는 "8년 전 처음으로 사진촬영을 시작했다"며 "무역업에 종사했지만 은퇴 후 뭔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정 대표는 하루 일과 중 3시간을 오롯이 서울 곳곳의 거리를 거니는 데 할애한다. 터틀넥과 면바지, 운동화, 가벼운 외투 등 걷기에 편안한 옷차림으로 매일 목적 없이 걸으며 눈과 마음에 와 닿는 장소와 사람을 조용히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무게가 가벼운 라이카 미러리스와 캐논 카메라가 장비의 전부였지만, 카메라를 부적처럼 지니고 서울을 누빈 결과 지난 5년간 수만 장의 사진이 일기처럼 남았다. 이 무렵엔 미국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와 한국작가 이갑철, 임재진의 사진집도 즐겨 봤다.

정 대표는 "평생을 살아 너무나 익숙하게 여겨온 서울은 내 발걸음이 옮겨짐에 따라 어느새 반짝이는 미지의 세계가 되고 있었다"며 "가슴 한편에 묵혀둔 추억과 소회를 풀어낼 수 있는 해방구가 돼주고 있음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낡은 동네와 소외계층이 밀집된 변두리 언덕을 자주 찾았다. 낡고 오래됐지만 문명이라는 명분의 개발로 이 모습들이 사라지는 게 못내 아쉬웠다고 한다. 서울이 '기억의 장소'를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동안 과거 1960년대 사회적 교류의 공간 역할을 맡았던 골목길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친숙한 장소로서 인식될 만한 공간을 점차 상실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정수복의 말처럼 서울에는 오래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오늘의 모습만 존재하는 거죠."

건강을 위해 조심씩 도심을 걷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소명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꼭 찍어놔야 하는 사진들, 이 역시 아마추어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때문에 직접 촬영하는 작업 외에 2년 전부터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작업 및 전시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정 대표가 지분 일부를 소유한 빌딩 꼭대기 층 495㎡의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는데 그를 포함 총 22명의 사진 애호가들이 금전적 지원을 돕고 있다. 회사이름인 '스페이스22'는 이 전시실의 층수를 본 따 지은 것이다. 그간 30명가량의 작가들이 '스페이스22'를 통해 후원을 받았다.

정 대표는 "DSLR카메라 보급률이 1000만대에 달하는 반면 변변한 사진박물관 하나 없는 게 국내 현실"이라며 "작가들이 작품을 보여줄 만한 공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나 대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이 사진 분야에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중 역시 사진이 기존 회화작품과 마찬가지로 문화소비재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작가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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