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카데르를 보내 트로츠키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는 스탈린으로 알려졌다. 트로츠키는 레닌 사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1927년 추방된 뒤 세계 곳곳을 떠돌았다. 스탈린이 외국에서 떠돌던 트로츠키를 암살한 이유는 그의 영향력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상은 서유럽의 공산주의 지식인과 혁명가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고 그는 반(反) 스탈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배반당한 혁명' 등의 저서도 발표했다. 스탈린은 혁명 당시 트로츠키의 역할을 축소 왜곡했고 그의 사상이 레닌에 맞서는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트로츠키가 추방된 뒤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가족과 측근들도 대부분 죽였다. 트로츠키 역시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추방된 뒤 세계를 떠돌던 트로츠키가 멕시코에서 죽게 된 사정은 이렇다.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를 전전하던 트로츠키를 멕시코로 부른 것은 민중화가로 이름을 떨치던 디에고 리베라였다. 리베라는 트로츠키가 1937년 멕시코로 망명하는 것을 도왔고 부인이던 프리다 칼로의 친정집을 거처로 제공했다. 프리다 칼로와 트로츠키의 로맨스가 싹튼 것도 이 무렵이다.
트로츠키는 사망하던 해인 40년 2월의 죽음을 예감한 것처럼 일기에 유언을 남겼다. 그는 "의식을 깨우친 이래 나는 43년의 생애를 혁명가로 살아왔다.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중략) 인생은 아름답다.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기를…"이라고 썼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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