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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터미네이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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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강의 적인 T-3000에 맞서 부모 잃은 소녀의 보호자로 다가가
성숙한 기계인간의 모습과 욕심이 부르는 파국 동시에 보여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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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위성통신, 인터넷, 우주정거장. 아서 클라크(1917~2008)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그는 영국의 작가, 발명가 겸 미래학자이다. 클라크는 단편 '파수(The Sentinel)'와 장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공지능도 예언했다. 이건 더 지켜봐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클라크의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탐사선의 컴퓨터 '할'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하나씩 제거한다.

미래사회에 대한 클라크의 암울한 예측은 스탠리 큐브릭(1928~1999)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비롯해 많은 공상과학영화의 실마리가 됐다. 제임스 카메론(61) 감독의 '터미네이터' 시리즈 1, 2편도 여기에 속한다. 액션, 스릴러 요소 등을 절묘하게 가미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클라크의 우려 섞인 시각은 화려한 볼거리 앞에 많이 가려졌다. 특수효과 기술에 전환점을 마련한 영화라서 더 그랬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시리즈 전작보다 더 큰 스케일과 액션 시퀀스를 자랑한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엘리슨(32)은 "지금껏 아무도 만들지 못한 전쟁 장면이 나온다"고 했다. 앨런 테일러(50) 감독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고 했다. 영화에는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 T-1000(이병헌)은 물론 최첨단 나노 입자로 이뤄져 자유롭게 변형, 침투할 수 있는 T-3000(제이슨 클락)이 등장한다. 너무 능력이 뛰어나 인간형 로봇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고물로 느껴진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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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볼거리 속에서 영화는 클라크의 경고를 섬뜩하게 전한다. 가족과 인간을 우선적으로 그리면서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미국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 1(2011)'에서 독특한 세계관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낸 테일러 감독의 감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부모를 잃은 사라 코너에게 보호자로 다가가는 T-800에게서 부성애가 느껴질 정도다. 테일러 감독은 시리즈 전작의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영리하게 결합시키고 효과적으로 비틀어 클라크의 메시지를 강조하는데 몰두했다. 인공지능 시스템 '스카이넷'에 대한 고찰이 대표적이다. 군사 방위 목적으로 개발됐다고 규정했던 장치를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계된 것으로 바꿔놓았다. 10억 명 이상의 환영을 받은 시스템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처럼 인간을 계획적으로 배신하는 구도다.

테일러 감독은 "대작 액션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강하게 던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작의 어떤 사실과도 충돌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의도는 T-800에 가장 잘 담았다. 시리즈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2003)'에서 그는 "나한테 이성 따윈 기대하지 마. 난 기계야"라고 외친다. 시리즈 2편에서 존 코너에게 "네가 왜 우는지 알고 있어"라며 위로하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테일러 감독은 3편을 따르지 않았다. 슈왈제네거의 주름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으면서 심장이 없는 로봇도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진화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액션도 중요했지만 보호자로서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표현했다"고 했다. 사라 코너는 우여곡절을 함께 하며 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부정하지 않기는 관객도 마찬가지. 스티븐 스필버그(69) 감독의 영화 '에이 아이(2001)'에서 인간의 사랑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데이빗(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이 이 장면을 봤다면 기립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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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테일러 감독의 눈은 클라크처럼 디스토피아를 향한 듯하다. 사라 코너의 아들이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던 존 코너를 사상 최강의 적인 T-3000으로 설정했다. T-3000은 자신을 "기계도, 인간도 아닌 그 이상"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향후 시리즈가 더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의 욕심이 또 다른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명제에서 어긋나진 않을 것이다. T-3000의 아버지 격인 '스카이넷'을 창조한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테일러 감독은 T-800과 T-3000, 심지어 '스카이넷'에게조차 인간적인 면을 불어넣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의 '할'처럼 말이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데이브 보우먼 선장이 전원을 끄려고 하자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인간은 이런 피조물을 따뜻하게 안을 준비가 돼 있을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굳이 해답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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