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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하늘이 맑은데 미세먼지가 있다고?

최종수정 2018.08.02 16:33 기사입력 2018.05.02 12:46

김병민 과학저술가
김병민 과학저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크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길이를 재는 자에는 1밀리미터(㎜) 단위로 눈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1㎜를 다시 1000등분하면 크기가 눈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길이는 1마이크로미터(㎛)입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핸드드립 커피를 직접 즐깁니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종이 필터를 써야 합니다. 필터에는 20㎛ 정도의 촘촘한 간격의 필라멘트가 있어 커피 입자를 걸러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볼펜 끝에는 볼이 있습니다. 그 볼을 팁이 감싸고 있고 종이 위를 볼이 구르며 내벽과 볼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을 통해 흘러나온 잉크가 글자를 만듭니다. 그 틈은 약 15㎛ 정도입니다. 우리 손에는 늘 휴대전화가 들려 있습니다. 이제는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책보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지요. 화질은 점점 좋아집니다. '레티나'(Retina)는 눈의 망막을 뜻하는데 맨눈으로 보는 것 같다는 디스플레이 제품 이름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고화질을 만드는 작은 화소의 크기는 대략 가로 25㎛ 세로 80㎛의 사각형이고 화소 사이는 불과 10㎛ 떨어져 있습니다.

또 휴대전화에는 카메라가 있습니다. 전화기의 원래 임무는 통화인데 지금은 디스플레이와 카메라가 소비자 선택의 주요한 기준입니다. 통화보다 멋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이제는 한국 회사들에 뒤처져 쇠락했다는 일본 기업 '소니'의 카메라 센서가 대부분 휴대폰에 들어 있습니다. 점점 작고 얇아지는 휴대폰에 카메라 화소 수를 늘리려면 픽셀을 더 작게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소니가 독보적 기술을 가졌죠. 카메라 센서 안에는 2000만 개의 픽셀이 있고, 그 하나의 크기는 약 1~2㎛입니다. 이 정도만 돼도 아주 작은 크기라 할 수 있겠죠.

생명체에서는 이런 크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 몸 안에 가장 많은 세포는 적혈구와 혈소판 입니다. 산소 운반과 혈액의 응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적혈구와 혈소판은 2~8㎛ 크기입니다. 세균인 박테리아는 수㎛이고 바이러스는 평균 0.1㎛ 입니다. 단위가 달라집니다. 0.1㎛는 100 나노미터㎚입니다. 1㎚는 10억 분의 1m입니다. 이렇게 작아진 크기는 정밀한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익숙한 것 가운에 나노미터 크기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람의 눈은 380㎚에서 780㎚까지 파장의 빛만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가시광선 영역입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리모컨에 사용하는 980㎚ 레이저 파장은 보이지 않고 650㎚ 파장을 사용하는 레이저포인터는 붉은색으로 보입니다. 더 작은 것을 알아볼까요? 마법의 돌인 반도체는 집적도 한계에 다다릅니다. 회로의 간격이 10㎚로 좁혀지면서 1년 6개월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종말을 맞이하는 시대입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의 세상을 엿봤습니다. 그런데 어렵고 불편합니다. 사실 디스플레이 화소 사이가 10㎛인 사실은 사는 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카메라 소자가 1㎛ 크기인 사실과 볼펜의 잉크가 15㎛ 틈에서 나오는 것도, 적혈구와 박테리아 그리고 텔레비전 리모컨 레이저 크기를 몰라도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커피 필터의 구멍 크기를 몰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1㎜ 이하의 세계는 과학자나 공학자가 사는 세상에는 의미가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접근하기 불편한 크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은 불친절하게 이 크기를 국민 일상으로 옮겨 왔습니다. 어느 날부터 초미세먼지가 생활을 파고듭니다. 이 용어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초미세먼지를 관리하기 시작한 시기가 2015년으로 불과 몇 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미세먼지를 의미하는 PM2.5 는 'Particulate Matter'라는 미세먼지를 의미하고 숫자는 먼지 지름이 2.5 마이크로미터(㎛) 이하를 말합니다. 크기에 대한 언론과 정부의 몰입도가 놀랍기도 하고 우리 머리는 불편합니다.

잔뜩 뿌연 하늘을 보면 보이지 않는 입자가 두려워 마스크를 찾습니다. 우리가 보는 잿빛 하늘이 미세먼지의 크기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맑은데 미세먼지가 많다고 합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우리가 보는 하늘 색깔은 태양 빛이 물질에 흡수되지 않은 빛입니다. 그런데 이 빛이 눈에 도달하기까지 산란이라는 복잡한 물리적 과정을 거칩니다. 주로 질소와 산소 분자로 이루어진 공기 입자는 태양 빛을 여러 방향으로 튕겨냅니다. 특히 가시광선 중에 파란색 빛을 강하게 산란하지요. 맑은 하늘이 푸르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존 윌리엄 스트럿 레일리
존 윌리엄 스트럿 레일리
특정 파장을 산란하는 정도는 입자의 크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입자 크기와 파장과의 관계를 알아낸 과학자가 영국의 존 윌리엄 스트럿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Rayleigh)입니다. 유명한 '레일리 산란이론'(Rayleigh scattering)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입자의 크기가 빛 파장보다 작은 경우에만 이 법칙이 성립됩니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수백 ㎚에 불과하니 맑은 하늘에만 적용되겠죠. 만약 구름처럼 입자가 큰 수증기의 경우에는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됩니다. 이런 크기에는 '미 산란이론'(Mie Scattering)이 적용됩니다. 미 산란은 거의 모든 파장의 빛을 전부 산란시켜서 다중산란이라고도 합니다. 안개나 구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구름이 성장하면 수증기가 응결하며 입자가 커지는데, 이때는 구름 입자들이 빛을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검은 건 이 때문입니다.

이제 공기 안에 다양한 크기의 미세먼지가 등장합니다. 미세먼지는 작은 고체 물질이고 기체 안에 퍼져 있습니다. 사실 미세먼지는 수십 나노미터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까지 다양한 입자로 불균일하게 분산돼 있습니다. 심지어 대기의 높은 곳에서는 배출가스와 자외선이 만나 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 내는 고체 입자가 10㎚ 크기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크기와 밀도로 퍼진 입자는 대기 환경과 함께 복잡한 산란 법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보는 대기의 모습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건조한 날에 큰 미세입자는 다중산란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 날은 미세먼지와 상관없이 시야가 깨끗해 보입니다. 낮은 농도에도 습도가 높으면 뿌옇게 보이기도 합니다. 미세먼지 농도와 성분은 보이는 색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측정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성분이 괜찮은지, 그렇지 않고 해로우면 어느 정도 해로운지,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을까요?

국민은 혼란스럽습니다. 연일 미세먼지의 크기와 위험성이 들리고,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는 불티나게 팔립니다. 어느 날 대중교통 공짜탑승 시도로 해결해 보려 하지만,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중단합니다. 누구 하나 미세먼지의 정체와 근원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 초미세먼지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정부에서 수십 년 동안 측정한 대도시 대기의 질은 예전보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서울은 지금의 중국보다 나빴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나빠졌다고 체감합니다. 측정 기준이 강화되니 모르고 지나갈 일도 알게 되고 신경이 쓰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유독 예민한 걸까요? 며칠 전엔 공장도 자동차도 얼마 없는 제주도가 가장 미세먼지가 많았습니다. 분명 외부 요인이란 것을 알지만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정황만 있고 증거가 없습니다. 지금은 크기에 모든 것이 매몰돼 있습니다. 미세먼지 크기는 작아져 가고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커지기만 합니다. 이제 그 입자의 정체와 근원적 해법에 집중할 때입니다.

가축의 배설물을 모아 열병합발전 재료로 사용하는 생태마을인 독일의 윤데 마을.
가축의 배설물을 모아 열병합발전 재료로 사용하는 생태마을인 독일의 윤데 마을.
얼마 전 독일에 있는 지인과 대화중에 거기도 미세먼지가 있지만, 시민들이 한국처럼 예민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독일 윤데(Juehnde) 마을은 가축의 배설물을 모아 열병합발전으로 사용하는 생태 마을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긴 호흡으로 화석연료 대신 버려지는 것을 대체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같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크기를 아는 일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화력발전소는 여전히 가동되고 공장은 연기를 뿜고 있습니다. 엄청난 아파트 건설현장에는 흙먼지가 날립니다. 자동차를 타고 마음껏 에너지를 사용하며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누리면서 공기가 맑아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일처럼 집 앞에 배설물과 쓰레기를 모아 재생에너지라도 만들려면 집값이 내려갈까 두려워 목소리를 높일 겁니다. 이제 다소 불편해지더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세먼지는 더욱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초미세먼지마저 걸러주는 성능 좋은 마스크가 아닙니다. 과학으로 증명된 범인을 찾고 더디고 불편해도 참고 실행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언젠가 다시 맑은 공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그 불편함을 참고 동참해 수고할 의향이 있는지 자문을 해 봅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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