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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소의 중국여지승람]애국시인 육유(陸游)와 당완(唐琬)의 애정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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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전 죽음마저 넘어선 애절가, 갈라진 바위로 남아



◆육유와 심원
새롭게 재정비된 심원은 남송의 애국시인 육유(陸游ㆍ1125~1210)를 중심으로 꾸며놓았다. 그는 이곳 소흥 출신일 뿐만 아니라 심원과도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육유의 호는 방옹(放翁), 자는 무관(務觀)으로 송나라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탄생한 지 2년 후에(1127년) 금(金)나라가 수도 개봉을 함락함으로써 북송은 멸망하고 남쪽으로 천도한 고종(高宗)에 의해 남송 정권이 성립됐다.
육유는 29세에 과거시험에 1등을 했으나 당시 권력가인 진회(秦檜)의 방해로 취소됐다. 진회는 금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主和派)로 명장 악비(岳飛)를 죽게 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의 손자가 시험에 2등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고시관을 협박해 육유의 합격을 취소시킨 것이다. 육유는 1158년(34세) 진회가 죽은 후에야 벼슬길에 나갈 수가 있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며 그는 줄곧 금나라와 싸워서 중원을 회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주화파들의 공격을 받아 여러 번 파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북벌(北伐) 의지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파직당한 지 13년 만인 1202년(78세)에는 조정에서 그에게 비서감의 벼슬을 내렸으나 그 이듬해 4월에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지내다가 1210년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만여수의 시를 남긴 위대한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국에 대한 애국 충절로 인해 우리나라의 선현들이 그의 시를 가장 많이 읽었고 운자(韻字)를 따서 지은 차운시(次韻詩)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육유와 당완
심원의 여러 유적들 중에서 관람객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채두봉 시벽(釵頭鳳詩壁)'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한다. 육유는 20세에 모친의 주선으로 외사촌 누이인 당완(唐琬)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금실이 좋았으나 모친이 며느리를 미워했다. 이유는 아들이 결혼 후에 학업을 게을리 했다는 것이다. 무척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모친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결혼한 지 2년 만에 헤어지고 말았다. 그 후 육유는 왕씨(王氏)와, 당완은 조사정(趙士程)과 재혼했다.
육유는 27세 되던 해 어느 날 홀로 심원을 찾았다. 당완과 자주 왔었던 이곳에서 그녀와의 옛 추억을 반추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했던 것일까, 마침 당완도 남편과 함께 심원에 왔다. 멀리서 육유를 알아본 당완은 남편의 동의를 얻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손수 술을 따랐다. 이에 말할 수 없는 감회에 젖은 육유는 즉석에서 심원 담 벽에 사(詞) 한 수를 썼다. 이것이 유명한 '채두봉'이다.

불그레 고운 손, 황등주 따르는데
성 가득 봄빛이요 담장엔 버드나무
동풍이 심술궂어 즐거운 정 엷어졌네
가슴에 수심 품고 헤어진 지 몇 년인가
잘못됐어, 잘못됐어, 잘못됐어

봄빛은 예 같으나 사람은 야위어
눈물 흔적 비단 수건 붉게 적시네
복사꽃 떨어지고 못 가 누각 고요한데
산을 두고 한 맹세 남아있으나 편지 한 장 못 부치니
말아라, 말아라, 말아라

이를 본 당완도 주체할 수 없는 감회에 젖어 답사(答詞)를 지었다. 이렇게 만난 지 4년 후에 당완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금 심원에 있는 시벽(詩壁)에는 오른쪽에 육유의 사, 왼쪽에 당완의 사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물론 960여년 전에 쓴 글씨가 남아있을 리 없고 현재의 시벽은 1978년에 육유의 글씨를 집자(集字)해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은 사랑
육유는 이후에도 당완과의 추억이 서린 심원을 여러 번 방문해 많은 시를 남겼다. 그중에서 당완이 죽은 지 40여년 만에 75세의 육유가 다시 찾은 심원에서 쓴 '심원 2수'는 지금도 읽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제2수를 소개한다.

꿈 깨어지고 향기 사라진 지 사십여 년에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개지 안 날리네
이 몸도 머지않아 회계산의 흙 되련만
아직도 옛 자취 찾아 눈물 흘린다.

만년의 육유는 매년 봄이 오면 심원을 찾아 당완을 그리며 시를 남겼다. 81세 때 쓴 시에서 "옥골(玉骨)은 구천의 흙이 된 지 오래인데/먹 흔적은 아직도 벽 먼지에 갇혀 있네"라 말한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담 벽에 쓴 그의 글씨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서거하기 1년 전에도 병든 몸을 이끌고 심원을 찾아 당완을 추억하는 시를 남겼다. 한 남자가 죽은 여자를 60년이 지나도록 이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한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열부(烈夫)라 할 만하다. 심원을 복원하면서 이곳을 육유를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한 이유를 알 듯하다.



◆무관당(務觀堂)과 안풍당(安豊堂)
심원은 크게 고적구(古迹區), 동원, 남원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고적구에는 문매함(問梅檻), 팔영루, 육조정(六朝井), 고학헌(孤鶴軒), 채두봉 시벽, 송정정(宋井亭) 등이 있고 동원에는 문정석(問情石), 광사재, 금대(琴臺), 작교(鵲橋) 등이 있다. 남원의 무관당은 육유의 사당이고 안풍당은 육유 사적 진열관이다. 안풍당에는 육유의 사적을 애국장지(愛國壯志), 애향적자(愛鄕赤子), 애정비가(愛情悲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임종 때 아들에게 남긴 시이다.

죽고 나면 만사가 헛된 줄 알지만
구주(九州)가 하나 됨을 못 본 것이 슬플 뿐
우리 군사 북으로 중원 평정하는 날엔
제사 때 아비에게 잊지 말고 알려라

이렇듯 육유는 죽는 날까지 나라를 걱정한 애국시인이었다. 이 시는 안풍당 안 육유의 흉상 뒤에 모택동의 필체로 새겨져 있다. 모택동이 여기까지 와서 이 시를 써놓은 것이다. 심원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 단운석(斷雲石)이 우리를 맞는다. 중간이 갈라진 계란 모양의 바위인데 오른쪽에 '단(斷)'자가, 왼쪽에 '운(雲)'자가 새겨져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끊어진 구름'이지만 '斷雲'은 중국어음이 같은 '斷緣(단연ㆍ인연이 끊어지다)'과 서로 뜻이 통한다. 그러므로 중간이 갈라진 이 바위는 육유와 당완의 인연이 끊어진 것을 상징하고 있다. 심원의 야외무대 연리원(連理園)에서는 매일 밤 '몽회심원(夢回沈園)'이라는 제목의 공연이 열리는데 여기에서도 육유와 당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송재소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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