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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8]물! 물을 물로 보지 마라!

최종수정 2017.12.06 13:37 기사입력 2017.12.06 13:37

김병민 과학작가
칠순을 바라보시는 저희 어머니가 요즘 스마트 폰에 푹 빠졌습니다. 시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하면서도 작은 화면을 만지며, 자식들이 행여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 하여 여러 생활정보를 문자로 보내줍니다. 어머니에게는 불혹을 넘긴 자식도 그저 아이로만 느껴지나 봅니다. 어느 날 출처가 불분명한 '전자레인지를 쓰면 안 되는 이유 10가지'라는 제목이 달린 글을 보냈습니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물은 식물을 죽게 하고, 익힌 음식이 뇌 기능을 파괴하며, 단백질은 물론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 등 영양소가 변형돼 해로운 물질이 된다는 겁니다. 결국 전자레인지가 각종 암을 유발한다는 무서운 내용이었지요. 나이 드신 어머니께서 놀랄 법도 했습니다. 인터넷이 등장하며 정보에 접할 기회가 쉽고 빈번해졌지만, 동시에 허위 정보도 많아서 그 진위 판단이 중요하고, 정보 확산에 따른 책임감도 커졌습니다. 과연 어머니가 보낸 저 정보는 사실일까요?

 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물에 대해서 대개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물이 생명체가 살아가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중요한 물질임은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학을 알지 못한다는 '과알못'일지라도 물 분자의 화학식인 H2O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곧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화학물질입니다. 화학식이 너무 간단해서인지 우리는 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분자로 이루어진 물은 상상할 수 없이 복잡하며, 또 놀랍게도 그 구조가 아직까지 완전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에 대한 갖가지 이상한 정보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합니다.

 물은 다른 화학물질에 비교해 비교적 넓은 범위 온도에서 액체상태로 존재합니다. 물이 0도 아래에서 얼고 100도 이상에서 기체로 변한다고 알고 있지요. 자연에서 대부분 물질은 0도와 100도 사이에서 물처럼 액체상태로만 존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 정도 작은 크기 분자는 가볍기 때문에 대개 기체로 존재합니다. 그러면 물 분자는 얼마나 작을까요?

 이를테면 2ℓ 생수병에는 대략 66조에 다시 조를 곱해야만 하는 엄청난 숫자의 물 분자가 있습니다. 0이 무려 24개나 달린 숫자입니다. 이 숫자는 우주에 있는 모든 별의 개수보다 몇 배나 많습니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 분자가 많이 있어도 크기가 작은 분자들은 가벼워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상온에서 물 분자보다 크기가 큰 이산화탄소나 산소 분자가 기체로 존재하는 것은 분자 자체가 작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물 분자는 일상적인 온도에서도 액체로 존재할까요?

 그 까닭은 특이한 물 분자 모양 때문입니다. 산소 원자에 결합한 두 수소 원자는 약 104.5도를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물 분자의 분자 모형은 마치 귀가 달린 곰 인형 얼굴 같습니다. 이 모양이 만들어진 이유 중에 하나는 산소의 전자 때문입니다. 원자끼리의 결합에는 전자가 필요하고, 물의 경우에는 산소에 전자가 많아서 결합에 관련 없는 전자가 남아 있습니다. 산소 쪽에 남아 있는 전자는 물분자에서 음성(-)을 띠게 됩니다. 그리고 수소 원자가 모여 있는 부분이 양성(+)을 띠고, 결국 물 분자는 부분적으로 다른 극성을 띠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 물 분자는 이 극성 때문에 서로 이끌려 붙어 있게 됩니다. 이것을 '수소결합'이라고 합니다. 이 결합은 마치 포스트잇을 벽에 붙였다 떼는 것처럼 매우 약한 결합입니다.
 액체 상태에서 물 분자는 서로 붙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 분자는 서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 횟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서 매초 수조 번을 끊어지고 다시 결합합니다. 그리고 물 분자는 서로 결합하며 빠르게 회전을 합니다. 1초에 24억5000만 번을 회전합니다. 물 분자 몇 개가 엄청난 횟수로 붙었다 떼어지며 회전을 한다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마시는 물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1945년 미국의 무전기 회사의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퍼시 스펜서에게 우연하지만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회사는 레이더 장비에 필수적인 부품인 마그네트론이라는 부품을 제조하는 곳입니다. 마그네트론은 마이크로파 신호를 생성하는 진공관입니다. 어느 날 마그네트론이 동작 중이던 실험실에 들어갔던 퍼시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초콜릿이 녹아 버린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런 현상이 자꾸 되풀이되자 워낙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했던 퍼시는 이 현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분명 마이크로파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여러 실험을 합니다. 실험실에서 옥수수가 팝콘이 되고 달걀이 익었습니다. 결국 이 마그네트론으로 음식조리기 형태로 만들었고, 그 이름을 '레이더 레인지'라 붙였습니다. 이 조리 기계는 무겁고 크기도 컸으며, 값도 비쌌기에 가정보다는 식당에서 주로 사용했습니다. 처음 설치한 곳도 보스턴의 한 레스토랑입니다. 지금의 전자레인지와 비슷한 소형이 본격적으로 퍼진 건 1970년 이후입니다. 전자레인지의 영어 이름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microwave oven)인 것은 마이크로파를 쓰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파가 어떻게 음식물을 조리할 수 있었을까요? 마이크로파의 진동수는 1~300GHz 입니다. 1초에 10억 번 이상 진동하는 전자기 파동입니다. 마이크로파는 레이더에도 쓰지만, 휴대전화나 무선전화기도 이 영역의 전자기파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범위의 마이크로파 가운데 정확히 2.45GHz 진동수를 가진 전자기파를 사용한 것이 전자레인지입니다. 곧 1초에 24억5000만 번 진동하는 전자기파입니다. 이 숫자가 왠지 익숙합니다. 앞에 말한 물 분자의 회전수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자레인지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물 분자는 짧은 시간이지만 몇 개의 물 분자가 붙어서 회전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이크로파의 전자기장이 회전하는 물 분자 덩어리에 영향을 줘서 더 빨리 회전을 시키거나, 회전을 방해하며 결합한 물 분자를 분리시킵니다. 떨어져 나간 물 분자는 더욱 활발하게 운동을 하고 분자끼리 충돌을 합니다. 이 회전과 충돌로 많은 열에너지가 방출됩니다. 충돌로부터 나온 열에너지로 음식물을 데우는 겁니다. 이 진동수를 가진 마이크로파는 다른 물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의 고체상태인 얼음에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얼음의 회전진동은 액체상태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해도 음식물 안에 있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과 같은 거대한 분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음식물 분자들 사이에는 물 분자가 있기에 전자레인지 안에서 뜨거워진 겁니다. 물이 전혀 없는 물질은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도 절대로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물 분자 덩어리인 물은 다양한 조건에서 전혀 다른 모습과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물이 너무도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물이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속이고 속고 있습니다.

 과거에 육각수가 건강에 좋다 하여 비싼 값에 육각수 만드는 기계가 팔렸던 적이 있습니다. 액체인 물 분자에서 두 수소 원자 사이가 104.5도로 기울어져 있어 물 분자를 가지고 규칙적인 배열의 결정 구조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얼음 상태의 물 분자를 가지고 규칙적인 얼음 결정으로 만드는 것도 어렵습니다. 눈송이가 육각형인 것은 얼음 분자가 평면에서 주변으로 확산할 때 평면 공간을 채우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벌집 모양의 육각형이기 때문입니다. 액체 상태에서 육각형 배열의 물 분자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육각수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규명된 바가 없습니다. 만들었다고 하는 육각수는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최근에 수소수라는 물이 인터넷에서 비싼 값에 팔립니다. 광고에 수소가 활성산소의 유해성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소가 활성산소의 산화력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수소수라는 물에 수소가 이온화되어 더 들어 있다는 양조차도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우리 몸은 수소수를 마시지 않아도 풍부한 수소이온을 함유한 체액을 분비합니다. 수소수가 유용하다는 증거라며 과학논문을 들이대지만 대개는 판매자와 관련 있는 논문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찮게 여기거나 쉽게 생각할 때 '물로 본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주의 나이와 그 시작을 알고 원소의 기원을 알아냈고 원자의 모습과 그 안에 존재하는 입자까지도 밝혀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조선 후기의 풍자화된 인물인 봉이 김선달이 황소 60마리 값을 받고 한양상인 허풍선에게 대동강 물을 팔았던 것 같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을 물로 보는 것이 맞지만 물로 보면 안될 것이 물이기도 합니다. 과학이 유행이다 보니 과학을 앞세운 유사과학이나 괴담이 생겨납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시대입니다. 과학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갑자기 오늘 어머니 스마트 폰에는 어떤 괴담들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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