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7] '빛의 혁명' LED, 생활 시계를 바꾸다

최종수정 2017.11.08 08:19 기사입력 2017.11.08 08:19

대낮 같은 도시의 밤 풍경, 휴식과 따스함은 추억 속으로

김병민 과학작가
마을에 해가 지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어둠이 삼킨 골목길과 집들이 하나둘 빛과 함께 형체를 다시 드러냅니다. 제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은 언덕 위에 있어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어둠이 내린 검푸른 마을의 창들이 하나둘씩 주황색이 감도는 노란 불빛으로 밝아지던 광경을 신기하게 내려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금세 전등 불빛이 온 마을에 빼곡하게 들어찼습니다. 마을의 전봇대나 담벼락에 간신히 매달려 골목길을 흐릿하게 비추던 가로등도 어느덧 켜졌습니다. 밤이 오면 마치 상점의 간판 불이 켜지는 것처럼 그렇게 집과 골목이 빛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담장을 넘어오는 갈치 굽는 냄새와 따스한 빛으로 마을은 밤을 맞이하느라 분주합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조명이 없던 시절에 해가 지는 동네 풍경입니다. 그 따스한 느낌의 주황빛은 대부분 백열전구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곧잘 전구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어쩌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다 툭 하고 끊어지는 전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대개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이었고, 어린이 프로를 볼 때라서 투덜거리며 가게에 갔다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낮에까지 멀쩡하던 게 왜 하필 꼭 그때 끊어질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전구의 필라멘트는 텅스텐이란 금속으로 만듭니다. 텅스텐은 금속 가운데 무겁고 단단한 것에 속하며 녹는 온도가 섭씨 3422도로 가장 높습니다. 모든 전기를 통하는 물체는 전기가 흐르면 크든 작든 열이 발생합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비교적 높은 온도를 내는 도체를 이용한 것이 겨울에 사용하는 전열기입니다.

 백열전구는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려 열과 빛을 냅니다. 이것이 바로 백열전구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필라멘트에서 열이 발생하고 빛을 내려면 적당한 저항이 필요합니다. 텅스텐의 저항은 차가울 때 더 작아집니다. 낮은 온도를 좋아하는 금속이기 때문이지요.

 저녁에는 낮 동안 차갑게 식은 필라멘트의 저항이 작아져서 스위치를 켜면 전류가 갑자기 많이 흘러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또 그때는 전류가 불안정한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겁니다. 불이 켜 있는 전구를 만지면 아주 뜨겁습니다. 그것은 전기에너지가 전구에서 빛을 만드는 데는 5% 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열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구는 조명 기기라기보다는 전열 기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그리스 신화에서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고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두 번째로 받은 선물이 바로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인 백열전구입니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텅스텐 백열전구는 에디슨이 발명하고 30년이 지난 뒤인 1910년, 윌리엄 쿨리지가 필라멘트의 수명을 연장한 겁니다. 에디슨 전구는 텅스텐이 아닌 탄소 필라멘트였습니다. 백열전구는 지난 100년 동안 인류에게 밤을 낮처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밤을 인류의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급격한 산업발전은 에너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체 에너지의 95%를 낭비하는 백열전구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효율 좋은 빛을 얻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 결과 LED라는 세 번째 불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그 중간에는 형광등이란 기술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은과 형광물질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백열전구와 함께 그 자취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백열등과 형광등은 기한을 정하고 퇴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거의 모든 조명 기구를 파는 곳은 LED 조명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LED는 특정 물질에 전류가 흐를 때 물질 내부의 에너지 차이에 의해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특정 물질은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며 사용되는 물질로 실리콘(Si)과 그 주변의 원소인 게르마늄(Ge), 갈륨(Ga) 그리고 비소(As) 등입니다. 전류가 흐를 때 서로 다른 물질에서 과잉 전자가 빈자리로 이동하며 빛을 방출합니다.

 요즘 들어 익숙해진 LED 조명은 최근에 발명된 것이 아닙니다. 첫 등장은 거의 반 세기도 더 전인 1962년입니다. 미국 GE사의 닉 홀로니악이 처음 적색 LED를 개발했습니다. 그 전까지의 LED는 적외선이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LED도 세상에 나타납니다. 이제 빛의 삼원색 가운데 푸른빛만 만들어내면 제대로의 광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마지막 남은 최후의 빛, 이른바 '청색 LED' 개발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백색'을 만들 수 있고, 자외선과 가까워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LED를 적, 녹, 청의 순으로 차례로 만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의 크기 때문입니다. 빛은 붉은색보다 청색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강합니다. 청색을 넘어선 자외선이 피부를 태우는 이유가 강한 에너지 때문입니다. 적색 LED가 먼저 개발된 건 작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을 다루는 게 쉬웠던 것인데, 거기서 청색까지 가는 데는 27년이나 걸립니다.

 1994년 드디어 각고의 노력 끝에 나카무라 슈지를 포함한 일본 과학자 셋은 질화갈륨을 이용해 청색 LED를 만들었고, 이 업적으로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청색 LED 발명이 뭐라고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백색을 발광하는 LED는 세 가지 색을 조합해 만들어도 되지만 순수한 백색이 필요하면 '청색 LED'를 이용해야 좋은 품질을 가진 '백색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적색 LED에 투명한 청록색을 씌우거나, 녹색 LED에 보랏빛 심홍색을 통과시켜 백색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색 LED가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백색광을 만들어냅니다.

 휴대전화 뒷면에 있는 플래시를 자세히 보면 조그만 노란색 부품이 보이는데, 이것은 형광물질입니다. 투명한 노란색 형광물질 아래에 있는 청색 LED 빛이 합쳐져 우리 눈에는 백색으로 보입니다. 요즘 수많은 IT기기 디스플레이에 청색 LED가 쓰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불안정한 전력 공급에도 LED는 작동하고, 태양광 발전에 의한 낮은 전력만으로도 어두움을 물리쳐줍니다. 적은 전력으로도 자외선 살균이 가능해서 빈곤 국가에서 오염된 물로 인한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자외선에 가까운 청색은 인류의 수명까지 늘리게 됩니다.

 1887년 3월6일, 어스름이 깔린 경복궁의 건청궁 앞마당에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어둠이 건청궁을 집어삼키려 할 때 눈부시게 환한 빛이 터졌으며, 그 빛이 어둠에 사라졌던 풍경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이것이 전구를 우리 땅에서 처음 사용했던 순간입니다. 고종은 미국의 에디슨전기회사에 의뢰해 건청궁 앞에 있는 연못의 물을 끌어들여 수력 발전소를 지어 건청궁에 전구를 밝혔습니다. 이로부터 전구는 129년간 한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명도 한참 길어지고 훨씬 밝은 LED가 우리의 생활 시계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을음과 희미한 등불에서 벗어나 구리선을 타고 오는 전기로 밝은 빛을 만들어 냈으며, 휴식의 밤과 생산성을 바꾸었습니다. 해가 지면 쉬던 사람들은 스스로 쉬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 겁니다. 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밤 사진을 보면 태양만 없을 뿐 도심은 낮과 진배없습니다. 도심 빌딩은 깊은 밤까지 빛과 함께 사람들을 가두고 있습니다.

 '멜라토닌'이란 호르몬은 우리 몸속의 시계입니다. 자외선에 가까운 푸른빛을 보면 멜라토닌 호르몬 방출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봄에 유난히 피곤한 이유도, 해외여행 후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것도, 노인들이 새벽잠이 없는 까닭도 모두 이 호르몬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야 할 시간에 뇌가 휴대전화나 TV의 LED 빛에 노출되면 수면 리듬이 깨집니다. 우리가 만든 빛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담을 타고 넘어오던 생선 굽는 냄새와 흐리지만 따뜻한 전등 빛이 생각납니다. 집안은 삼십 촉 전구 아래 퇴근한 가장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로 생기가 돕니다. 그 따뜻함과 휴식을 가져온 불빛은 대부분이 백열전구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새로운 빛에 편리함과 휴식을 교환한 우리는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가끔은 그 빛을 끄고 그 빛에 가려진 자신과 친구 그리고 가족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병민 과학작가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오늘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