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왜 슈퍼맨은 지구를 여덟 바퀴 돌지 못했나

최종수정 2017.10.11 15:52 기사입력 2017.10.11 15:52

광속의 비밀

김병민 과학작가
해마다 추석이면 극장가는 블록버스터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위험에 빠진 인류와 지구를 외계인이나 악당으로부터 구하는 영웅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줍니다. 요즘은 영화 속의 영웅도 다양하지만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영웅은 '슈퍼맨'이 첫 손가락에 꼽힙니다.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 영웅은 우리 시대의 꿈과 모험에의 열망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정의와 상상력을 가르쳐 준 우상이었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웅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죽자 오열을 하며 지구를 빠른 속도로 돌아서 지구의 자전을 반대 방향으로 바꿉니다. 그러자 세상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결국 사고 전 시간으로 돌아가 연인을 살릴 수 있었지요. 우주의 시간마저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은 과학적 사실을 떠나, 가장 가지고 싶었던 능력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능력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특별한 일을 하나 합니다. 지구 자전 역방향으로 빠르게 돌았는데 바로 1초 동안 일곱 바퀴 반을 날아간 겁니다. 일곱 바퀴도 아니고 여덟 바퀴도 아닌 일곱 바퀴 반입니다. 더 빨리 돌았다면 더 먼 과거로 가서 애초에 벌어질 일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요. 슈퍼맨은 왜 그 속도로 비행했을까요? 여기에는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빛에 대해서 많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척 불편한 사실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빛이 1초 동안 일정하게 2억9979만9458m라는 거리를 간다는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구 둘레의 길이는 약 4만㎞입니다. 그러니까 빛이 지구 둘레를 달린다면 1초에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습니다. 결국 영화에서 슈퍼맨은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간 셈입니다. 빛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날 수는 없었을까요? 그리고 빛은 어떤 까닭으로 언제나 정확하게 같은 속도로만 날아가며, 인류는 빛이 이 엄청난 속도를 가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갈릴레오
 빛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대에도 그 정체를 알기 위한 인류의 호기심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답을 알기위해 그 탐구는 끊임없이 계속됐습니다. 기원전 유클리드에서부터 뉴턴과 오일러와 영까지 많은 과학자는 입자론과 파동론을 번갈아 주장하며, 빛은 직진한다는 성질을 밝혀냅니다. 이것이 그리 멀지 않은 18세기 초까지의 일입니다. 그저 이론에서 머문 빛 속도는 늘 의문이었고, 실험을 통해 빛의 속도를 알려고 한 것은 16세기 갈릴레오가 시초였습니다. 그의 측정 방법은 눈에 보이는 번개 불빛과 시간 차이로 들리는 천둥소리를 가지고 거리를 구하는 방법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무척 부정확한 방법이니 오차도 컸지요. 그가 찾아낸 빛 속도는 대략 소리 속도보다 열 배 남짓 빠르다는 정도입니다. 결국 빛 속도는 무한하다라는 결론을 냅니다. 이후에는 천체를 대상으로 빛 속도를 측정합니다.

오로지 천문학자들만 빛 속도 측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태양계 행성 중 하나인 목성을 선택합니다. 지금처럼 오염이 많은 대기에서도 목성은 잘 보이니까 당시에는 더 잘 보였을 겁니다. 목성에는 이오라는 위성이 있습니다. 위성이 목성에 의해 가려지는 월식을 통해 계산했지요. 결과는 초속 21만2000㎞였습니다. 측정하는 기준의 잣대가 커지니 비교적 근사치의 값을 얻었습니다. 이제 더 먼 천체로 잣대를 키워봅니다. 밤하늘 북극 부근에 있는 용자리가 그 대상이었지요. 용자리에 있는 항성을 기준으로 얻어낸 빛 속도는 초속 30만1000㎞입니다. 무척 놀라운 근삿값입니다. 19세기에는 천체가 아닌 레이저와 광학기구를 사용해 빛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을 시도합니다. 푸코는 빛을 렌즈와 거울을 이용해 직접 측정을 합니다. 물론 앞선 과학자의 측정방법을 개량한 것이지만 이 방법을 통해 얻는 결과는 초속 29만8000㎞입니다. 심지어 푸코는 물속에서 빛 속도까지 측정하며 빛의 본질을 밝혀냅니다. 이 때문에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의 논란은 종식됐습니다. 하지만 대략적 속도는 알았지만, 빛이 왜 이 속도를 가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지 않으니 측정 한계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여기서 잠시 다른 학문영역을 살펴 보겠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8세기에는 전기에 대한 학문이 급성장합니다. 전선에 전기가 흐르면 주변에 자기장이 발생합니다. 자기장에 대한 학문 영역도 전기와 떼어 낼 수 없습니다. 지금 어른들은 학창시절에 배운 전기와 자기에 관한 이론을 대부분 잊었겠지만 '오른손 법칙'이 있었다는 건 어렴풋하게 기억날 겁니다. 손가락에 힘과 전류와 자기장 방향을 결정하는 법칙이지요. 여기에는 쿨롱부터 가우스와 패러데이, 그리고 앙페르까지 수많은 과학자와 방정식이 등장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전류가 전하의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자석의 같은 극끼리 서로 밀치는 작용처럼 같은 극성을 가진 전하도 결국 서로 밀어냅니다. 바로 척력이지요. 일정 거리의 전하 사이에 존재하는 척력의 정도를 정해야 모든 힘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못에 전선을 감고 전류를 얼마나 흘려야 어느 정도의 자석이 되고 모터를 만들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척력에 사용하는 상숫값이 바로 전기상수입니다. 마찬가지로 전하가 움직여서 전류를 만들면 자기력이 생기는데, 그 자기력도 일정한 상숫값으로 정의합니다.

맥스웰
 19세기에 들어 자기력에 변화를 주면 거꾸로 전기력이 생긴다는 사실까지도 발견합니다. 자기 상수까지도 정밀하게 측정하였던 거죠. 결국 두 개의 상수도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겁니다. 상수가 서로 연관이 있어서 결국 전기력과 자기력의 변화에서 관계를 찾아냅니다. 이렇게 전기력과 자기력의 상호관계를 방정식으로 풀어낸 사람이 제임스 맥스웰입니다. 바로 전자기 이론을 완성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두 가지 힘이 서로 맞물려 주기적인 파동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두 상수의 곱셈 안에 어떤 기본 속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분명 전자기 파동이 진행하는 속도인 겁니다. 상숫값의 곱셈이니 속도값 또한 일정하게 변하지 않는 상수였던 것이지요. 그 값이 초당 29만9800㎞ 였습니다. 물리학자의 계산에 그때까지 천문학자가 측정한 빛의 속도가 있었던 겁니다. 결국 1862년에 맥스웰에 의해 빛의 정체는 전자기파의 한 종류이고, 그 속도가 초속 약 30만㎞라는 걸 알게 됩니다. 어쩌면 고전물리와 현대물리의 경계는 맥스웰이 선을 그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맥스웰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맥스웰 이후 인류의 문명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시속 100㎞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앞서가는 차를 보면 속도는 0에 가깝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반대 차선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는 차의 속도는 200㎞에 가깝습니다. 거시세계에서의 속도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더하거나 빼면 구해집니다. 하지만 빛은 특수한 성질이 있습니다. 만약 시속 350㎞를 달리는 KTX 열차에서 전자기파의 일종인 빛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달라지면 전자기 방정식이 맞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열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쓸 수 없다는 거지요. 빛은 달리는 열차에서도, 더 빠른 비행기 안에서도 방향과 관계없이 1초에 30만㎞를 달립니다. 인류는 빛이 일정한 속도를 가졌음을 안 이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모든 첨단 문명은 빛이 일정한 속도를 가진 상수에 의지합니다. 속도가 어떤 환경에서도 이런 일정한 상숫값을 가진 것은 빛 속도 하나뿐입니다. 너무도 신기하지만 인류는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과학은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그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운동한다는 것만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식적 운동을 벗어나 전혀 다른 운동을 하는 빛 속도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불편합니다.꿈과 모험으로 가득한 아이에게 슈퍼맨은 지구를 여덟 바퀴 돌 수 없다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빛보다 빠른 것은 없기에 인류가 우주의 끝을 여행하는 꿈을 포기하게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도 한계에 부딪칩니다. 하지만 전자기파인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가족과 추석 명절에도 화상통화를 하며 그리움을 달랠 수 없고, 위성이 내려주는 GPS로 고향으로 가족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의 길 안내를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일정한 빛 속도는 인류와 우주 모두에게 풍족한 선물이었습니다.


김병민 과학작가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오늘 본 뉴스

아시아경제 추천뉴스

리빙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