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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두 남자, 노벨상 그리고 '스카치테이프'

최종수정 2017.09.07 16:24 기사입력 2017.09.06 13:03

김병민
우리 주변에는 어떤 물건의 상표가 일반명사를 대신해 사용되는 사례가 흔합니다. 간혹 특정 상품의 상품명이 한 시대를 유행하며 일반적 개념으로 통용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보통명사처럼 되어 원래의 단어조차 알지 못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로 '굴착기' 영문 이름은 '엑스커베이터(excavator)'입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포클레인'이란 말은 프랑스 건설기계 제조회사 이름인 '포클렝(Poclain)'에서 와전된 표현입니다. 수입 초기에 굴착기에 적혀있던 회사 이름이 기계 이름으로 굳어진 겁니다. 또 제사에 올리는 술인 '정종'은 일본 청주 상표인 '국정종(菊正宗)'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아예 술 이름으로 사용이 되기 시작한 거죠. 바른 표현은 '청주'입니다. 물론 일제가 밀주를 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사에 쓰이게 된 것이기에 지금은 '약주'를 쓰는 게 맞습니다. '크레파스'도 '크레용'과 '파스텔'을 합친 일본 회사 제품명이지요.

 쓰리엠3M 회사는 이런 상품들을 가진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붙임쪽지'라 순화된 단어를 만들기는 했지만, 보통 상품명인 '포스트 잇'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회사 제품으로 입에서 잘 고쳐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스카치테이프'입니다. 이 이름의 유래도 흥미롭지만, 그 여정 또한 특별합니다. 어느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공적 때문에 과학계에는 일반명사처럼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요. 오늘은 이 테이프의 궤적을 추적해보겠습니다.

 이 궤적은 미국 미네소타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작은 사포 회사에 취직한 어떤 청년에게서 시작합니다. 비록 대학 중퇴라는 학력이었지만 연구소에서 일할 정도로 열정적인 청년이었지요. 1920년대는 자동차를 두 가지 색으로 칠하는 '투톤 컬러'가 대유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다른 색으로 칠하려 원래의 칠 표면 위에 종이를 덮고 테이프를 붙여 경계를 깨끗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도장공에게는 골칫거리였습니다. 당시 페인트나 테이프 둘 다의 성능이 좋지 않아 심할 때는 처음부터 다시 일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청년이 사포 표본을 지역 내 자동차 수리공장에 배포하는 업무를 하던 어느 날, 가는 곳마다 도장공들이 테이프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서 '붙였다가 떼도 접착제 자국이 남지 않는 테이프'를 떠올립니다. 그는 천에 모래를 붙여 사포를 만들기 위해 회사에서 사용하는 접착제를 토대로 연구해서 몇 년 후 이상적인 접착제 배합을 완성합니다. 이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렸고, 말단 조수였던 그는 연구소 기술 부문장으로 승진도 합니다. 그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실용화하기 위해 매진합니다. 당시 프랑스 듀폰 사는 셀로판을 발명했지요. 그는 투명 셀로판을 사용한 신제품 개발을 시작했고 결국 새로운 접착제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스카치 셀로판테이프'라 붙였습니다. 이 작은 사포회사가 '미네소타 채광가공 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로, 지금은 그 앞 글자 셋을 딴 이름으로만 부르는 유명한 '3M'이지요. 대학 중퇴의 학력에도 이 다국적 기업을 일으킨 이 청년은 리처드 드루였습니다.
 그런데 '스카치'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스카치'는 스코틀랜드인에게는 속어인데, 인색한 사람이나 부족한 물건을 뜻합니다. 하지만 검약한 스코틀랜드 사람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요. 당시 드루가 테이프에 접착제를 양쪽 끝에만 아껴 발랐다고 해서 '인색한 상사(Scotch boss)'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대공황 기간이었고 이 제품이 각종 물건의 수리나 보수에 이용되어 사람들이 어려운 시절을 넘어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뜻이 더 진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어쨌든 이 상품명이 셀로판테이프의 보통명사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이 상품이 확고하게 과학사에 흔적을 남기며 이름을 굳힌 사건이 생깁니다. 2010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꿈의 신소재인 '그래핀(graphene)'을 만든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결합하며 한 층으로 이뤄진 2차원 구조의 얇은 물질입니다. 두께는 원자 한 개로 0.35나노미터 정도입니다. 비록 원자 한 층으로 된 구조지만 그 강도는 철의 수백 배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몇 배나 강합니다. 또 전기 전도성이 구리나 실리콘보다 100배나 좋습니다. 게다가 빛의 98%를 통과시키고 유연성까지 뛰어난 기능을 지녔습니다. 이것이 신소재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그리 생소한 물질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스카치테이프만큼 쉽게 볼 수 있는 문방구가 연필입니다. 이 연필심 성분은 잘 알다시피 흑연이지요. 흑연 결정의 구조는 독특해서 여러 층의 그래핀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구조입니다. 그래핀은 탄소 결정의 얇은 원자 한 층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핀 층끼리는 결합이 약해서 잘 깨집니다. 우리가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쓴다는 것은 손의 압력에 의해 흑연에서 그래핀 덩어리를 층의 결 방향으로 깨뜨려 종이 섬유질 틈에 붙이는 겁니다. 물론 종이에 붙어 있는 그래핀 덩어리는 그래핀 한 층이 아니라 수천, 수백만 층이 붙은 작은 비결정 흑연입니다.

 1947년에 이론 연구로부터 그래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보통 이렇게 새로이 발견한 신소재는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온이나 진공과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 만든 것이면 일상의 온도나 공기에 노출되면 오염되거나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핀은 상온에서 안정적이기에 일상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고, 또한 여러 특별한 기능이 있어 꿈의 소재로 불립니다. 플라스틱에 그래핀을 1%만 섞으면 금속보다 강하고 전기가 통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물질은 첨단 과학기술에서 기대감이 높습니다. 특히 투명도가 좋아서 정보통신 기기에 필수적인 디스플레이 장치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화면을 터치하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 표면에 얇은 투명전극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ITO라는 인듐과 산화주석의 화합물을 사용합니다만, 인듐은 희귀 광물이고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핀은 이 자리를 대체할 유력한 후보자입니다.

 그래핀 존재에 관한 이론 연구가 시작된 지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실제로 만들어내지 못했었습니다. 그것을 2004년 가임과 노보셀로프 연구팀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겁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하는 겁니다. 그들은 스카치테이프를 흑연에 붙였다 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흑연이 얇아졌고 마침내 원자 한 층까지 얇아진 그래핀을 만들게 됩니다.

 현재 그래핀을 만드는 방법이 몇 가지 더 있지만 아직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 이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하는 박리법입니다. 다른 방법들은 그래핀에 불순물이 포함되거나 결함이 생기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최첨단 소재임에도 스카치테이프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을 보면 그 젊은 청년이 만든 접착제 배합 비율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신의 한 수가 된 셈입니다. 이렇게 스카치테이프는 당당하게 노벨상 수상 논문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사실 안드레 가임 교수는 최초로 노벨상 말고도 이그노벨상까지 받은 괴짜입니다. 자기장을 이용한 '개구리 공중부양'으로 이그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에는 재밌거나 엉뚱한 면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엉뚱한 실험은 우주 개척을 위해 자기장이 인간에 미치는 생리적 영향에 관한 연구에 기초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스카치테이프를 만든 드루의 잘 떨어지는 접착제도 엉뚱한 시도의 결과입니다. 접착제는 잘 붙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튼 겁니다. 만약 우리에게 원자 한 층을 만드는 것과 같은 어려운 과제를 주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할 겁니다. 비슷한 시기에 그래핀 분리를 연구한 한국의 과학자가 있습니다.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이란 기대가 있었지요. 김필립 교수는 창의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그래핀 한 장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 영국 연구팀 소식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지적 프레임에 갇혀 상상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답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었고, 사실은 그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 미래는 지식의 집합뿐만 아니라, 그 지식에 어떻게 상상력을 더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 상상력이 때로는 아주 엉뚱하게 보이는 시도일지라도 말입니다. <과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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