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녀였던 나에게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쟁의 참상은 무시무시했다. 신의주 어디 쯤에서 한밤중 배를 타고 몰래 피난길에 올랐는데 일행 중 갓난아기가 울어대자 발각돼 모두 죽게 될까봐 엄마가 아기를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는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비극이다.
할머니가 왜 어린아이에게 그런 끔찍한 피난 이야기를 하셨을까 궁금했는데, 한참 후에야 영화 '국제시장'을 보다 그 의문이 풀렸다. "그렇게 목숨 걸고 내려와서 너희가 태어난 거니, 좋은 세상에서 잘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나던 그 순간,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는 그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하지만 그날이 평소보다 조금 더 특별했을 뿐, 이미 우리는 역사를 살아오고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살아낸 한 세기가 바로 우리 현대사였고,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전쟁의 상흔 하나하나는 삶에 각인된 역사였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마주한 바로 그 전날, 할아버지를 경기도 파주 끝자락에 마련된 실향민들을 위한 추모공원에 모셨다. 임진강 너머 북한 땅이 바라보이는 그곳에서 어르신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고향별로 나눠 정해진 자리에 묻혔다. 한반도에 봄 기운이 활짝 피어나던 날, 할아버지는 하늘 가는 그 길에서 북녘 고향을 잠시 둘러보고 가셨을까.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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