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영혼이 없는 존재일진대, 무리한 기대를 했던 듯하다. 정권이 바뀐 뒤 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신속히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세월호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을 지지하고, 누리과정 예산의 국가 부담과 같은 중요한 결정들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는데 역시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과 내년 고교 내신 절대평가 전환 여부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지난 달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취합한 뒤 다음 달까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장관 공석을 이유로 여태 단 한차례의 공청회 일정도 잡히지 못한 상태다.
달라지는 대입 제도는 '3년 예고제'에 따라 법적으로 3년 전에 발표해야 한다. 2021학년도 입시를 치르는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능의 어느 과목까지 절대평가로 전환되느냐,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학생부전형이 중요해지는 것 아니냐며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갈지, 일반고를 가야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책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진학 지도를 해야 하는 교사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책의 최고 결정권자인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지만 어째 교육부의 수많은 공무원들은 일제히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명색이 국가고시를 거치고 최소 십수년간 교육행정에 몸담아 온 전문가들인데 정책의 방향을 묻는 질문마다 "결정된 바 없다"로 일관한다. 마치 새로 임명될 장관 혼자서 산적한 교육 현안을 모두 결정할 기세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인 진학 문제를 놓고 고민중일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입시 문제 만큼은 교육부가 현재 거론되는 여러 가지 안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정책적 검토를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 필요한 의견 수렴은 언제쯤 어떤 절차로 진행하게 될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 말로 국민과의 소통이요,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만에 하나 김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장관 임명이 다시 지연될 경우 2021학년도 대학 입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중3 학생들은 또다른 입시제도를 놓고 머리를 싸매야 하는 '실험쥐'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