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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최종수정 2018.01.16 14:51 기사입력 2018.01.11 11:53


최근 우연히 이런 라틴어 경구를 접했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 '살아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강한 생의 의지와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찬 말인가. 필자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는 평소 같았으면 시쳇말로 '오글거려서' 쉽게 언급하지 못할 단어다. 그러나 으레 그러하듯 새해를 맞아 미흡한 작년을 돌이켜 보며 새로운 시작, 힘찬 계획을 구상하고 변화와 개선의 의지를 북돋우던 차에 접하면서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과거 두 정권을 지나며 '헬조선'과 '노답'이라는 유행어로 압축되는 좌절과 자조의 현실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했다. 미래가 안 보이는 우리 사회에 아파하며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도 광장으로 나가 개혁의 촛불을 밝힌 덕에 우리는 작년 마지막 달력에 선명히 표시된 12월 20일 '대통령 선거일'을 아무 일 없이 지나게 한 자랑스러운 성공 체험을 갖게 됐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그간 잘못된 부분이 하나씩 바른 방향으로 변해가고 긍정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북한 핵무기 도발, 미국의 강경·돌발 대응으로 한반도의 안보 위기 해소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신년사로 촉발된 남북의 대화 분위기는 꽉 막힌 숨통을 틔우고 있다. 역시 새해는 희망을 말하기 좋은 때인가.
새해 첫날, 영화 '1987'을 본 뒤에도 희망을 떠올렸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집회 중 사망 사건으로 촉발돼 온 국민이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 민주화를 외친 혁명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 속 87학번 새내기 연희는 군부정권의 지시로 민간인이 학살 당하는 1980년 5.18 광주의 모습을 접하고 충격을 받지만, 쉽사리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데모한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가족들 생각은 안 해요? 그날 같은 거 안 와요. 그러니까 정신 차려요"

이런 연희에게 잘생긴 대학생(이한열 열사)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어. 마음이 아파서"라고 답한다. 가족이 불법감금과 고문의 피해자가 되는 무서운 현실을 겪으며 연희도 끝내는 민주화 물결에 성큼 뛰어들어 벅찬 구호를 외친다.

연희와 동년배인 필자는 1987년과 2017년의 광장이 보여준 우리 사회의 진보상에 뿌듯한 희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한다. 장준환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7'은 6월 항쟁의 매우 아름다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다. 만일 끝 부분 자막에 '그 해 12월 군사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자막 한 줄만 덧대도 이 영화는 아예 다른 영화가 된다"고 지적했다. 구호가 아닌 행동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스페로 스페라. 살아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그러나 행동 없이 마음에만 담은 희망은 공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좋은 새해, 실행의 의지도 되새겨 본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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