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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사라진 서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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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서별관은 좀처럼 사람들에게 모습을 허락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분수대가 서별관을 그나마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분수대에서 청와대 쪽을 바라보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옥지붕의 건물이 정면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고, 서별관은 그 옆으로 지붕만 간신히 드러낼 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경제팀 비공식회의가 그곳에서 열려온 것도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장소적 특성 때문이라고 하니, 보일락 말락한 모습이 무척 닮아 보인다.

그런 서별관이 최근에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난달 초까지 청문회 등을 이유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이후 세간에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현안을 조율하기 위한 서별관회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현 정부 경제팀 가운데 한 명은 최근 기자와 만나 "서별관에 가본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오래'라는 게 어느 정도 기간을 의미하는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공백이 길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문득 해운과 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서별관회의의 문제점을 지적받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 금융당국 수장이 떠올랐다. 그의 소신도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는 정부 분위기에는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서별관은 청와대 내부에서도 꺼리는 장소가 되고 있다. 한때 청와대 직원들의 종교 모임이 서별관에서 열렸다. 그러나 회의가 질타의 대상이 되면서 '부정한 곳 아니냐'는 인식이 퍼졌고, 결국 종교모임은 장소를 바꾸고 말았다.
서별관회의는 우리 경제와 영욕을 함께 했다. 해운과 조선 구조조정 문제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1997년 문민정부 때는 금융개혁 조치가 이 회의에서 결정되기도 했다.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만나 재무부 출신이 맡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자리를 한은에 양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50년 설립 이래 줄곧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불린 한은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게 이 때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당사자가 전한 서별관에 대한 애착은 남달라 보였다.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서 서별관회의가 떠올랐다. 정책을 조율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도대체 누구냐는 얘기까지 들린다.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는 워싱턴까지 날아가 금리와 재정을 놓고 서로 앓는 소리를 했다. 경제에 대한 우려는 한 목소리지만 정작 의견 조율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자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서별관 회의는 지금이라도 다시 열려야 한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경제정책을 조율하고 추진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지금은 더 중요하다. '밀실'이라는 비판은 속기록을 남기면 된다. 그래야 대통령이 움직이고, 국민이 안심한다.






최일권 정경부 차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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