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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호들갑보단 타인존중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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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십인수지(十人守之)라도 부득찰일적(不得察一賊)이라는 말이 있다.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을 살피지 못한다는 뜻이다. 좀 고상하게 해석하면 사회 시스템과 제도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사람'이라는 변수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요즘 서울시 안팎에서 일고 있는 공무원 자살 사건을 둘러 싼 논란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다.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지난 5월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은 연간 인구 10만명 당 28.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사 대상 183개국 중 4위다. 그나마 맹독성 농약 판매 금지로 2010년 34.1명에 비해 16.8% 감소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보다 자살률이 높은 국가는 스리랑카(10만명 당 35.3명), 리투아니아(32.7명), 가이아나(29명)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자살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선 여러가지 분석이 있다. 개인적 요인으로는 우울증 등 정신병 치료 기피, 베르테르 효과의 유행, 잦은 아동학대, 한국 전쟁의 후폭풍 등을 드는 전문가들도 있다. 또 사회적 요인으로는, 빈부 양극화, 노인 빈곤, 청년 실업 문제 심화 등이 거론된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데다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들을 잘 돌보고 재기하도록 돕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자살 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유달리 뜨겁다. 서울시가 한강 다리 마다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고 조명ㆍ글씨ㆍ방송시설까지 만들어 자살 예방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5월에도 막 개통한 서울로7017에서 한 사람이 투신하자 안전 대책이 부실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경비 인력을 두 배로 늘리는 바람에 예산 수억원이 추가 투입되고 있다.

이런 한국적 현상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 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동양적 세계관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인간(人間)을 그 자체적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는 동양적 세계관은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남의 눈을 의식하며 '체면'을 중시하면서 살아가게 한다.
특히 자살과 같은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도 '관계'에서 원인과 해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관계보다는 '존재' 즉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의 경우 대조적이다. 지난해 10월 한때 세계 최대의 자살 명소였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골든게이트브릿지ㆍGolden gate bridge)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연 200~300명이 자살을 하지만 방지막 등 안전 장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고를 조심하라는 주의 표시 정도만 있었다.

서울시에서도 일 많기로 유명한 예산과 직원이 유서도 없이 부모에게 '요즘 일이 힘들다'고 한마디 하고 자살을 택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공무원노조들은 청사 1층에 분향소를 만들어 놓고 추모하면서 업무 경감ㆍ근로조건 개선 등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도 27일 전직원 조회에 참석해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공개 사과한 뒤 각종 대책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가 왜 죽었는지도 사실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 한다. 다만 자살 문제는 그때 그때 발생하는 사안에 따른 즉흥적ㆍ땜질식 처방으로 해결될 것은 아니다. 공정한 경쟁 보장ㆍ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더 배려하고 트라우마를 주지 않는 타인 존중의 사회적 문화가 필요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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