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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장충기 문자', 불합리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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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예의 없는 것보다는 불합리한 것이다." <아사다 지로 저(著), '칼에 지다' 중에서>.

이 구절은 지난 여름 휴가 중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다. 야쿠자 출신이라는 작가가 1800년대 메이지 유신 전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었다. '무사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다'는 통념과 달리 어떻게든 살아남아 가족을 위해 송금하는 것이 진정한 무사도라고 여기는 한 시골 촌뜨기 사무라이의 얘기다. 막부파에 몸을 담은 주인공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근왕파와의 대립 와중에 빼어난 활약을 펼치면서도 꾸준히 가족 사랑을 실천하다 목숨을 잃는다.
메이지 유신 시대 일본의 사회상과 근대화의 뿌리가 된 사무라이 정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기억에 남은 '예의보다 불합리한 것을 미워하라'는 말은 주인공의 동료인 왼손잡이 무사 사이토 하지메가 한 말이다. 왼손잡이를 터부시하는 일본 무도계에서 고리타분한 선입견ㆍ고정 관념을 깨고 왼손검의 달인이 된 덕에 신분, 예절 등은 도외시한 채 오로지 '실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거침없이 살아간다.

예의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다 못해 젊은이들을 착취ㆍ고사시키는 오늘날의 한국ㆍ일본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한 외침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선비들은 나이로 사람을 대우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열살 적더라도 학문을 논할 만한 상대라면 친구로 어울렸다.

더군다나 아직도 불합리한 '갑질'이 판을 치는 최근의 한국 사회를 보면 더더욱 실천에 옮겨야 할 말이다. 육군 대장과 그 부인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장병을 노예처럼 부리는 등 온갖 분야에서 다양한 갑질이 사회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합리ㆍ이성ㆍ시민사회라는 근대화의 기본 조차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300년에 걸쳐 겪으면서 하나 하나 바로잡아갔듯이, 나이ㆍ성별ㆍ출신ㆍ학력 등 각종 장벽을 부수고 상식과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해 예의라는 이름의 불필요한 권위ㆍ기득권에 맞서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연말과 올해 초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을 달구었던 촛불시위가 있었다. 온 국민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잘못된 권위와 기득권의 타락에 맞써 싸워 헌법 질서를 수호하면서 정권 교체를 이룬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모범 사례다. 기득권과 권위에 짓눌린 채 예의만 차리고 있었다면 시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이른바 '장충기 문자 메시지'를 둘러 싼 논란을 볼 때면 언론에서 일하는 종사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체 정화와 언론 미디어 시장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생존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뚤어진 행태를 계속 고집한다면 언론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를 면치 못할 것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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