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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호헌선언 “나는 현행헌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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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87년 헌법은 참 어정쩡하게 시작됐다. 6년 단임제와 4년 중임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다 ‘5년 단임’으로 애매한 타협을 보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혹자들은 ‘대권에 눈이 먼 정치꾼들의 야합이 낳은 사생아’라고 노골적으로 비꼰다.당시 ‘1노3김’이 한 번 씩이라도 대통령을 해먹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거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당시 국어학계는 헌법전문을 보고 “정치인들이 우리말글을 망치고 나라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분노했다. 일생을 한글연구에 바친 어느 노학자는 "일본식 표현으로 범벅이 된데다 800자가 넘는 헌법전문이 하나의 문장"이라며 "문법적으로 말도 안되는 문장"이라고 탄식했다.
‘개헌이 아니라 번역’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을 거의 그대로 베끼다 시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차라리 5년 단임제는 신선하다"라고 비아냥도 있었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지 몰라도 ‘그래도 그건 국산 아니냐’는 거였다.

그러고 보면 87년 헌법은 참 못났다. 철학적·역사적 컨센서스도 없고 대통령 직선제를 빼면 국민적 합의와도 별 관계가 없다. 하지만 '못난이 헌법'은 지난 30년간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논란과 조롱의 대상이 됐던 몇몇 제도는 실생활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순기능을 발휘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5년 단임제만 해도 그렇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담보한 것은 물론 같은 당의 후임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줌으로서 연임제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위헌법률심판이라는 골치 아픈 일거리를 맡지 않기 위해 판사들이 부린 꼼수의 결과라던 헌법재판소는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판단으로 대법원보다 더 높은 국민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 명실상부한 최고법원이 됐다.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탄핵심판과 한 차례의 위헌정당해산심판 등 첨예한 갈등으로 대립하는 정치적 위기상황을 헌법절차에 따라 해소하는 완벽한 입헌국가의 모습을 연출했다.
세계 헌법학계가 ‘가장 성공적인 헌법재판소’라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태국과 몽골 등 몇몇 국가에서는 우리 헌재를 모델 삼아 헌법재판소를 신설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훌륭한 헌법이다. 솔직히 우리 헌정사상 처음 갖는 헌법다운 헌법이다.

요즘 정치권과 국회에서는 개헌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해 대선 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한결같이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하더니 어느 새 다 다른 속내를 드러내며 제 목소리 내기 바쁘다.헌법이 무슨 정치적 주도권 싸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느낌마저 든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두자. 지금 헌법도 충분히 훌륭하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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