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 뿐이겠는가? 당시 국어학계는 헌법전문을 보고 “정치인들이 우리말글을 망치고 나라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분노했다. 일생을 한글연구에 바친 어느 노학자는 "일본식 표현으로 범벅이 된데다 800자가 넘는 헌법전문이 하나의 문장"이라며 "문법적으로 말도 안되는 문장"이라고 탄식했다.
그러고 보면 87년 헌법은 참 못났다. 철학적·역사적 컨센서스도 없고 대통령 직선제를 빼면 국민적 합의와도 별 관계가 없다. 하지만 '못난이 헌법'은 지난 30년간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논란과 조롱의 대상이 됐던 몇몇 제도는 실생활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순기능을 발휘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5년 단임제만 해도 그렇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담보한 것은 물론 같은 당의 후임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줌으로서 연임제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세계 헌법학계가 ‘가장 성공적인 헌법재판소’라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태국과 몽골 등 몇몇 국가에서는 우리 헌재를 모델 삼아 헌법재판소를 신설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훌륭한 헌법이다. 솔직히 우리 헌정사상 처음 갖는 헌법다운 헌법이다.
요즘 정치권과 국회에서는 개헌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해 대선 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한결같이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하더니 어느 새 다 다른 속내를 드러내며 제 목소리 내기 바쁘다.헌법이 무슨 정치적 주도권 싸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느낌마저 든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두자. 지금 헌법도 충분히 훌륭하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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