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역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쟁점이 됐던 것도 '방송장악'이었다. 방송, 그중에서도 여론 형성 기능이 큰 공영 방송 사장에 누구를 앉힐 것인가를 놓고 여야는 극한 대립까지 치닫곤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를 줄 알았으나 기자의 착각이었나보다.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162명은 지난해 7월 발의한 방송법, 방송문화진흥법 등 4개 방송관계법 개정안은 '특별다수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여야 7대6의 구성으로 바꾸고 사장을 선출할 때 재적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선임할 수 없도록 제어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 법안은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순탄할 것만 같았던 이 법안은 문 대통령의 '재검토' 발언 이후 향방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오히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자유한국당에 국회 보이콧의 빌미만 제공한 꼴이 됐다. 지난해 함께 개정안을 마련했던 국민의당조차도 "이런 시도는 명분도 없고 박근혜 따라하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야당 시절 정부 여당의 '방송장악' 음모를 그렇게 비판했던 문 대통령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정권의 방송 장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방송 독립을 위해서는 야당 시절의 절실했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 야 3당이 합의했던 방송관계법 개정안보다 더 훌륭한 대안을 찾으려다 또 몇년간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몇 해 전 한 언론학자가 들려준 얘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은 제도못지 않게 성숙한 시민의식에 달려 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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