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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가로등과 하수구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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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가로등만 좇는 연구자' '미래부 갑질 사무관' '업무 무능력 출연연 직원'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장면1.
늦은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가로등 아래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경찰이 이 모습을 목격했다. 경찰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는 "지갑을 잃어 버렸소"라고 말한다. 경찰이 그 사람과 함께 지갑을 찾는다.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지갑을 어디에서 잃어버렸습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곁에 있는 하수구를 가리키며 "저곳에서 잃어 버렸소"라고 답한다.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그럼 저쪽에서 찾아야지 왜 이곳에서 찾고 있습니까?"라고 힐난한다. 이 사람은 "저쪽 하수구는 어둡고 이쪽 가로등 아래는 아주 밝지 않소"라고 되받아친다.

김상욱 부산대 교수가 펴낸 책 '과학공부-시를 품은 물리학'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김 교수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나라 과학 분야도 밝은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곳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정작 지갑은 하수구에 있는데 누구도 가로등 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면2.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회의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관계자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이 자리에서 한 사무관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출연연의 모 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그는 "실장님! 얼굴 안 비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경험을 전하면서 "출연연은 미래부의 영원한 '을'"이라고 한탄했다.

장면3.
미래부의 한 사무관이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보면서 연신 한숨을 쉬고 있다. 책상이 꺼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출연연에서 작성한 분석 보고서 때문이다. 요점이 뭔지, 구체적 플랜은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괴발개발 제출한 보고서를 한편으로 치운다. 처음부터 자신이 다시 작성해야 할 판이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출연연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보고서는 물론 기획안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과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영화로 찍으면 블랙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자의 자율성 확대'에 방점이 찍혔다. 그 동안 '연구자의 자율성'을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가로등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지갑은 찾지 않고 "야! 우리가 최고지"라며 자화자찬하는 이너서클 꼴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부끄럽다.
미래부와 출연연의 '불협화음'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은 미래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세 장면의 모순을 걷어내는 게 과학기술 정책의 시작점이다. 아직은 그런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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