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슈와 거리가 먼 산업계를 취재하고 있으나 '선의와 '분노'을 둘러싼 논쟁은 남의 일 같지 않다. 기업도 현재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현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앞은 서울 광화문을 축소해 놓은 듯 했다. 하루 종일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을 외치는 이들과 이재용 불구속을 외치는 태극기 부대가 맞섰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본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태극기 부대와 촛불 집회의 사이에 낀 상태가 됐다.
그렇다면 이재용 부회장 불구속을 응원했던 태극기 부대에 대해 삼성은 고마워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삼성은 오히려 이들과 '같은 편'으로 묶이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촛불 집회의 속사정은 보다 복잡해 보인다. 일부는 이번 최순실씨 국정 농단의 주범이 이 부회장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 부회장 구속이 정경 유착 청산과 재벌 개혁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국정 농단의 주범은 최순실이 아니라 삼성이 되어 버렸다. 특검에 의해 "삼성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을 이용했다"는 프레임이 짜여진 것이다. 물론 삼성은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진실은 법원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은 별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 구속이 곧 대통령 탄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탄핵 판결 이후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국내 경제는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국론은 극도로 분열됐고 사회적 갈등 지수도 높아졌다.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는 팽배해졌다. 이제 광장의 분노를 어떻게 국가 발전을 위한 건전한 에너지로 순화할 것인가 고민해볼 때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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