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0년전인 1894년(고종31년), 그때도 갑오년이었다. 이 해 봄 전라도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했다. '녹두장군' 전봉준 등이 이끈 농민군은 탐관오리의 부패와 비리를 참다 못해 무장봉기를 했다. 조선 조정은 5월 농민군 진압에 나섰지만 장성에서 패퇴한 데 이어 전주까지 함락되자 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8월 일본은 조선 조정에 '갑오경장(甲午更張)'을 실시하도록 권고했다. 갑오경장은 서양식 법과 국가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고 신분타파, 통화정리, 도량형 통일 등 정치·경제 개혁이 뒤따랐다. 동학농민군은 10월 일본군에 대항하는 전쟁을 펼치기 시작했고, 12월 초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데 이어 전봉준·김개남 등이 24일 체포됐다. 이듬해 일본이 청일전쟁을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간섭을 더욱 노골화 했다.
그때로부터 또 120년전인 1774년(영조50년), 영조의 개혁정책이 무르익을 시기였다. 영조는 왕위에 오른 얼마 뒤인 1730년, 당쟁으로 국론이 분열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노론(老論)의 강경파 영수 민진원과 소론(少論)의 거두 이광좌를 불러 두 파의 화목을 권했다. 노론의 홍치중을 영의정, 소론의 조문명을 우의정에 임명해 당파를 초월한 소위 '거국내각'을 꾸리기도 했다.
다시 갑오년을 맞았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치권은 이념·지역갈등과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신(新)당쟁'이라 할 만하다. 밖으로는 북한체제 불안과 함께 중국과 일본이 다시 군사적으로 맞서고 있다. 청일전쟁 직전과 비슷하다. 주변 열강의 입김에 휘청이던 조선말기에도 위정자들은 편을 갈라 싸우기에 바빴다. '신(新) 갑오경장'을 강조한 이 땅의 지도자는 명성황후나 흥선대원군의 전철을 밟을 지, 영조나 정조를 따라갈 지 궁금하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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